고병수(아버지) : 나이가 든다는 것, 그 반대로 젊다는 것 모두를 보여주는 영화를 볼까? 어려서부터 늙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노년에서 젊어지는 쪽으로 흘러간다고 하면 더 강한 인상을 받을 거야.
고동우(아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씀이죠? 좀 충격적인 느낌을 가지고 영화를 봤어요. 태어나자마자 80대 노인의 모습을 한 아기라니..... 하지만 볼수록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어요.
고병수 : 영화를 보면서 보는 이들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되겠지만,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80대 노인의 현명함을 가지고 청년 시절을 보내고, 20대의 몸으로 늙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더라.
고동우 : 영화를 보면서 노화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모든 생명은 늙고 병든다. 이는 생명을 탄생시키고 진화하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종을 유지시키려는 생체의 항상성이 깨진다는 뜻이다. 노화는 생체의 항상성이 유지되지 않으면서 생리적으로 기능이 떨어져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약해지고 질병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하는 것을 가리킨다. 식물은 특정하기 힘들어도 동물은 수명이 정해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고양이는 10년, 개는 15년, 원숭이나 사자는 20년, 소는 30년으로 짧은 편이지만, 코끼리 70년, 거북이 150년, 고래는 종류에 따라 100~200년을 산다고 한다. 짧든 길든 수명을 마치면 기력은 떨어지고 죽는다. 어찌 보면 죽음의 길목인 노화란 것은 개체의 연속성을 지키려는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인간은 현재 평균 수명이 80세 전후로, 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적절한 조건이라면 120세가 최대 수명이라고 한다. 노화와 죽음에 대해서는 나이가 들면 지방 갈색소나 유리기(Free radical) 같은 해로운 물질이 축적되면서 몸의 기능을 잃는다는 주장을 비롯하여 여러 가설이 있다. 그중에서 최근 인정받는 노화 예정론이 있다면 텔로미어(Telomere) 가설이다. 몸속 세포의 염색체 끝부분마다 텔로미어라는 DNA 조각이 있어서 세포 분열할 때 염색체 양쪽 끝부분이 분해되지 않게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DNA가 복제될 때마다 일정 길이씩 소모되며 텔로미어가 완전히 없어지면 세포 분열은 멈추고 세포는 사멸한다. 그게 곧 노화이고 생명의 죽음이다.

1961년 미국의 의과대학 교수인 헤이플릭은 체외 조직 배양을 통해 태아의 세포는 100번, 젊은 성인은 30번, 노인은 20번 정도로 세포 분열 횟수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현상이 세포 노화를 일으키고 유전 시계처럼 생명의 종착역으로 이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지지 않게 복구한다면 생명이 연장되지 않을까? 현재 생명공학 분야에서 진행 중인 연구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몸은 여러 변화가 나타난다. 생물학적으로 근육이 줄어들어 피부는 쭈글쭈글 해지고, 지방이 쌓이며, 호르몬의 변화를 겪게 된다. 뇌는 회백질이 위축되면서 기억력이 감퇴하고, 판단력이나 기민함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일부는 치매로 진행한다. 3살짜리 유아가 고집부리고 떼쓰듯이 80세 난 어르신이 칭얼대며 어린아이처럼 되는 것은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에 따라 인생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련 영화를 보고자 한다.

80대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는 ‘위대한 개츠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낭만적이고 사회 풍자적인 글을 쓰던 피츠제럴드 소설들 중 독특한 전개를 가진 것으로, 배경은 재즈의 고향인 미국 뉴올리언스이고,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걸 기념하는 날 아기가 태어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아마도 작가가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쟁으로 참혹하게 죽어간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서이기도 하다. 시계공이던 한 남자가 기차역의 주문을 받고 커다란 벽시계를 만든다. 하지만 작동을 시작하자 시계는 거꾸로 가게 된다. 시계공은 아들이 전장에서 전사하자 시간을 되돌려 놓고 싶은 심정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병원에서 삶을 얼마 안 남긴 듯한 할머니가 딸에게 오래된 엽서와 편지들을 건네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어느 젊은 부부의 집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출산 후유증으로 죽고, 아버지는 괴물처럼 태어난 자기 아기를 근처 요양원 계단에 버려버린다. 태어나자마자 얼굴은 쭈글쭈글하고, 팔다리는 가늘고 어딘가 불구 같은 모습을 한 아기는 보자기에 싸여서 버려지지만, 요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퀴니가 데려와 키우기로 하고 벤자민 버튼이라는 이름을 준다. 퀴니의 남편도, 주변 사람 모두가 아기를 흉측하게 여겨도 요양원의 노인들은 모두 그 아기를 특별하고 귀엽게 생각하며 돌봐준다.

원작 소설로 영화를 만든 동기가 된 것은 마크 트웨인이 “사람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말했다는 데서 시작했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이 바랐던 노인의 지혜와 평등한 생각이 요양원에서 아기를 바라보는 노인들에게 투영되도록 피츠제럴드는 글에서 표현한 것 같다.

7살이 되어서 우연히 알게 된 어린 소녀 데이지를 만나 사랑을 느끼지만 둘이 맺어지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벤자민.
“엄마, 난 왜 이렇게 태어났어?”
“삶의 종착역은 다 같아. 그저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해서 갈 뿐이지.....”

80대로 태어나 청년으로 사는 삶

벤자민은 조금씩 걷게 되고, 뱃일도 배워 나가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요양원의 노인들, 자기를 키워 준 아버지 등 모두들 세상을 떠나지만 그의 얼굴 주름은 점점 펴지고 몸은 튼튼해져만 간다. 무용가로서 성공한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 우여곡절 끝에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벤자민(브래드 피트).
데이지가 묻는다.
“내 피부가 늙어서 쳐져도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얼굴에 여드름이 나도 여전히 사랑해줄 거야?”

벤자민은 젊음의 중간역을 지나 소년으로 어려졌다가 유아기로 빠지며 치매에 걸리게 되고, 더 시간이 지나 어린 아기가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정점을 지나 다시 어려지는 것과 같다는 것일까?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아기 벤자민을 데리고 산책을 하는 할머니 데이지. 영화는 다시 딸에게 오랜 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병실로 돌아오면서 마무리를 한다.

인생은 벤자민처럼 거꾸로 시간을 먹는 경우에나 현실의 우리처럼 가는 시간에 인생을 맡기는 경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영화는 인생이란 역경의 연속이고, 그 속에 사랑이 있고, 허무가 담겼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벤자민이 어려울 때 만난 사람들..... 삶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피그미 오티, 7번 번개 맞고 살아났고 벤자민에게 살아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말해주는 요양원 할아버지와 피아노를 가르쳐준 할머니, 도전의 가치를 보여주는 엘리자베스(틸다 스윈튼), 세상에 나아가도록 해준 마이크 선장 등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보게 될 인물들이다. 그리고 자기를 버렸지만 용서하게 된 아버지와 자기를 주워서 끝까지 사랑으로 키워준 어머니. 벤자민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들을 만났고 성장한다. 아니, 어려진다.

다시 마크 트웨인의 ‘80대로 태어나서 청년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는 행복’이나 이런 상상으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소설을 쓴 스콧 피츠제럴드, 원작과 내용이 많이 달라졌지만 엄청난 각색으로 소설 이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데이빗 핀처 감독. 이들을 떠올리며 영화의 끝자막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우리의 긴 삶의 여정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듯하다.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김규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