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시장 영향 제한적"

비상거시금융회의 개최

합동점검체계 가동키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현시점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의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정부는 높은 경각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주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추 부총리는 14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SVB 사태에 따른 국내외 금융시장 영향을 논의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회의는 지난 12일 거시경제·금융현안 관련 정례 간담회에서 SVB 사태의 영향을 점검한 지 이틀 만에 다시 열렸다. 현재까지는 국내시장에 대한 영향이 크지 않지만, 글로벌 금융시스템 불확실성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사태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국내금융기관과 부채구조 달라 = 추 부총리는 "이번 사태는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대응을 위한 고강도 금융 긴축이 지속되면서 취약 부문의 금융 불안이 불거져 나온 경우"라고 진단했다. SVB 폐쇄를 기점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재차 확대되자 각국 정부는 시장 안정 조치에 나섰다. 추 부총리는 "각국 대응에도 불구하고 간밤 국제 금융시장은 다소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그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은 향후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금리 인상 속도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미 국채금리는 큰 폭으로 하락하고 달러는 약세를 보였으며 주요 주가지수는 혼조세로 마감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전반적으로 안정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추 부총리는 "주식시장은 미국 등의 대응 조치 이후 외국인 자금 유입 등으로 코스피뿐 아니라 벤처기업이 다수인 코스닥도 소폭 반등했다"며 "국채시장은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고 글로벌 긴축 전망이 약화하면서 국채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했다. 그는 "향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해야겠지만 현재까지는 국내 금융시장 영향이 제한적인 양상"이라며 "국내 금융기관은 자산·부채 구조가 SVB와 상이하고 유동성이 양호해 일시적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충분한 기초체력을 가진 걸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또 "국내 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과 4대 공적연금, 한국투자공사(KIC), 우정사업본부 등 투자기관 등의 관련 은행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규모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걸로 파악돼 현 단계에서의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추 부총리는 "다만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아직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시스템 불안 요인까지 겹치면서 향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관계기관 합동점검 체계를 24시간 가동해 국내외 시장 상황과 금융시스템 취약 요인을 점검하고, 필요하면 신속히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다.

◆집단소송 제기, 여진 이어져 = 한편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주주들이 모기업인 SVB파이낸셜그룹과 경영진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 여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SVB파이낸셜그룹 주주들은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연방법원에 그레그 베커 최고경영자(CEO)와 대니얼 벡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주주들은 SVB의 취약한 사업 기반을 경영진이 공시하지 않아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21년 1월16일부터 2023년 3월10일까지 생긴 불특정 손해를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SVB는 고객층이 스타트업에 집중돼 있었으며 자산은 채권 중심이라 금리 인상에 취약한 구조였다. 또 예금 가운데 예금자보호 비중은 12%에 불과해 뱅크런에 취약했다. 이런 위험을 알리지 않아 피해를 봤다는 게 주주들의 주장이다.

SVB는 미국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로 파산한 은행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리콘밸리가 호황일 때 스타트업 고객들이 예치한 돈을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상당한 장부상 손실을 본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투자 환경 악화로 돈줄이 마른 스타트업이 SVB에 맡겨놨던 돈을 인출하면서 SVB는 어쩔 수 없이 채권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고, 장부상 손실은 실제 손실로 이어졌다.

이 사실이 시중에 공개되자 불안한 고객들은 한 번에 예금 인출에 나섰고 결국 유동성 위기로 폐쇄됐다.

전날 미국 규제 당국은 SVB 붕괴가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 예치금을 예금자보험 여부와 관계없이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들엔 자금을 긴급 대출해 주기로 했다.

["SVB 사태" 연재기사]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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