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이어 파면 촉구까지 … ‘교육 여건 평가·인증’ 의평원도 정부와 이견

국회 청문회 이후 보건복지부 장·차관을 향한 의료계의 공격이 거세다. 국회 청문회에서 2000명 증원을 본인이 결정했다고 밝힌 조규홍 장관을 고소한 데 이어, 의대 교수들은 장·차관의 파면을 촉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의대 교육의 질을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도 정부가 마찰음을 내고 있어 의정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전국 40개 의대가 소속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4일 보건복지부의 조규홍 장관과 박민수 제2차관이 의료농단과 교육농단을 일으켰다며 이들을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의교협은 성명을 내고 “의료계와 협의하기로 한 의정 합의서를 파기하고 초법적으로 증원 정책을 추진해 촉발된 의료농단, 교육농단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밝혔다.

전의교협은 또 “조 장관은 단독으로 의대생 연간 2000명 증원을 결정·발표해 의료·교육농단을 촉발했다”며 “이 농단으로 의대생과 전공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 2000명 증원 정책으로 의학교육 현장은 붕괴하고, 그에 따라 공공·필수·지역의료에 필요한 인력 조달은 불가능하게 됐다”며 “대책도 없는 무능한 정부는 이제라도 책임자를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2000명 증원을 단독으로 결정했다는 복지부 장관 그리고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수차례 소통했다고 허언하는 복지부 제2차관을 파면하라”며 “정부는 비과학적이고 몰상식적인 정책을 추진해 지난 넉 달간 1조원가량 건강보험재정을 써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는데, 더는 곳간을 축내지 말고 무모한 정책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이 진료 축소 및 재조정을 시작한 4일 내원객들이 외래교수 진료안내판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대통령 사전재가권한 침해” = 또한 이 단체는 의대생·전공의 학부모와 사직 전공의 등과 함께 조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소하기도 했다.

의료계 측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찬종’의 이병철 변호사는 1일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조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재가를 건너뛰고 직접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조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 직전 자신이 단독으로 의대 증원 숫자 2000명을 결정했고, 이를 대통령실에 통보했다고 답변했다”며 “헌법과 정부조직법상 대통령 사전재가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교육과정 평가에 정책 변화 반영 요구 = 이런 가운데 의평원과 정부도 마찰음을 내고 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의과대학 교육 관련 긴급 브리핑을 열어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이 의학 교육의 질 저하에 대해 근거없이 예단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지속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책 변경이 있었고, 다양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의평원이 새로운 상황을 반영해 평가할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의평원은 의과대학 교육과정을 평가·인증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국 의대들은 의평원으로부터 의대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에 대한 평가 인증을 2년이나 4년, 6년 주기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입학정원의 10% 이상 증원’ 등 의학교육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변화’가 생길 경우에도 평가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부터 정원이 늘어나는 32개 의과대학 가운데 증원폭이 작은 연세대(미래캠퍼스)와 인제대(각 7.5% 증가)를 제외한 30개 대학은 ‘주요변화’ 평가를 받게 된다.

인증을 받지 못하는 의대는 신입생 모집이 정지되고 졸업생의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제한될 수 있다.

◆정부, 의평원 구성 변화 요구 =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료계는 증원으로 상당수 의대가 시설·교수 인력이 부족해져 인증을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평원는 지난 3월 성명을 내고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증원하더라도 현재의 의학교육 수준과 향후 배출될 의사의 역량이 저하되지 않는다고 공언하면서 그 근거로 의평원의 인증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정부 입장에서는 전공의 집단사직과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비롯한 법정 다툼까지 감수하며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막상 대학들이 인증에서 탈락해버린다면 사실상 정책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교육부는 이에 더해 의사가 다수 포함된 의평원 이사회에 환자 등 소비자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할 ‘공익대표’를 참여시켜달라고 의평원에 요청했다.

하지만 의평원은 그동안 의학교육 여건을 중립적으로 평가해 왔다며, 대규모 증원에도 ‘교육의 질 저하는 없다’는 정책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의평원을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의평원은 의학교육의 평가까지 비전문적 이사들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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