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호 책임 외국에 맡겨 시스템 발전기회 잃어"

“우리나라 해외입양 제도를 보면 아동의 입장은 싹 무시됐어요. 무엇이 먼저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자국의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른 나라에 미뤄버린 채 수십년을 지내왔기 때문에 아동을 중심으로 아동인권에 기초한 시스템을 발전시킬 기회도 잃어버린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이경은 고려대 연구교수)

 

‘아동수출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오명이 부끄러운 이유는 단순히 해외로 내보낸 아이들의 어마어마한 숫자(65년간 약 20만명)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상처입기 쉬운 존재를 멀고 먼 나라로 보내는 과정을 아이들의 안전과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꿔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수십 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 11위라는 국가가 왜 아직도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는 건가요?” “한국 출신 입양아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다른 나라들은 훨씬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데 왜 한국은 그러지 않습니까?”라는 해외입양아 출신들의 외침이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부모 편의 배려한 IR-4비자 … 입양아 안전 포기 = 해외입양 과정이 아동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어는 ‘IR-4 비자’다. 이경은 교수에 따르면 2013년 입양특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미국으로 입양되는 한국 아동들은 대부분 IR-4 비자를 받았다. 미국은 아동이 출생국에서 입양 확정(full and final adoption)이 된 경우 IR-3 비자를 주지만, 미국으로 아동을 입국시킨 이후 입양확정이 완료될 경우에는 IR-4 비자를 줬다.

입양이 확정되지 않은 채 IR-4 비자를 받고 미국에 입국한 아이들에게 보장되는 권리는 10년의 영주권뿐이다. 시민권을 받으려면 입양 부모들이 별도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 아동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다. 입양부모의 의지와 선의에 아동의 시민권 취득을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동의 안전을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 있지만 이러한 관행은 바로 몇년 전까지 지속돼 왔다.

 

 


아동 입장에서 봤을 때 불완전한 형태의 IR-4 비자 발급이 계속 이뤄져 왔던 배경에는 입양아동보다는 입양부모의 편의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 미국 정부는 양부모가 아동을 직접 만나서 입양 절차를 밟았는지를 보고 입양 완료를 판단하지만 한국의 입양기관들은 양부모가 한국에 오지 않아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대신 입양 절차를 밟아주었고, 정부는 이를 허락했다.

이는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 출신 입양인 1만9000여명이 미국 시민권 미취득자로 추정되는 상황으로 귀결됐다.(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정감사 자료, 2017년 10월) 이 교수는 “미 국무부의 국제입양 관련 통계자료를 보면 2013년 이전까지 한국 아동은 IR-4 비자를 받았는데 이는 다른 나라 아동들이 미국 입국시부터 보호받는 체계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6월 제인 트렌카 정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 대표가 미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시민권 미취득 입양인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드러난다.

정씨는 편지에서 “미국 내 선거에 참가하여 투표를 하거나 배심원으로서 재판에 참여할 경우 사기죄 혐의 적용, 미국 연방정부에서 보장하는 참전군인 미망인에 대한 혜택 수혜 불가능, 미국 연방정부에서 보장하는 교육 혜택 수혜 불가능, 미국 내 가족으로부터의 분리 및 추방, 한국 내에서 적합한 방식 및 장기적 방식의 치료 부재로 인한 정신질환의 악화 및 자살사고 등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입양인들은 시민권 미취득으로 인해 추방 당해 한국으로 되돌아오지만 한국의 언어나 문화를 익히지 못한 이들이 방황하다 자살하는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국내입양도 마찬가지 … 민간 입양기관 자의적 판단에 맡겨 = 아동 중심이 아니라 양부모나 입양기관 우선으로 디자인된 제도는 국내입양 과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다.

2016년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은비(사망 당시 만 4살) 사건을 계기로 사건의 진상과 입양제도의 허점을 짚어본 ‘은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입양 과정에서도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원칙은 번번이 깨졌고 이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은비가 입양과정에 들어온 때는 만 2살때인 2014년 6월이다. 2~3살 이상의 어린이를 일컫는 연장아 입양은 신생아 입양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에서 더 섬세하게 다뤄져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은비를 맡고 있던 입양기관은 양부모에 대한 별다른 교육 없이 은비를 경기도 동탄으로 1차 입양전제 위탁을 보냈다. 법원에서 입양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입양 전제 위탁을 보내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는 일이지만 이는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당시 1차 양부모들은 연장아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사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은비는 ‘더이상 사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4개월 만에 입양원으로 되돌아왔고 1개월 만에 다시 대구로 2차 입양전제 위탁을 갔다. 이때 역시 입양기관장의 간단한 상담만 있었을 뿐 입양부모에 대한 교육은 없었다. 특히 파양되거나 다시 입양절차를 밟을 때에는 사례회의나 자문단 회의를 통해 절차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 입양기관에서는 그러한 공식적인 절차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몇개월 사이 은비는 자신의 운명을 건 이동을 몇 차례나 하고 있었지만 정부나 지자체는 이 과정을 바로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입양기관이 은비의 이동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이 은비의 입양을 최종 허락한 2016년 7월 22일, 이 때 은비는 이미 뇌사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었다. 은비가 대구에 머문 후 은비에 대한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2차례 이뤄졌지만 법원은 모르고 있었다. 입양허가가 나기 일주일 전인 7월 15일 심정지 상태로 경북대 병원에 실려온 은비의 자그마한 몸에는 멍과 화상자국은 물론 후두부 출혈과 각막 유리체의 출혈과 망막 박리 등 외부적인 폭력이 아니고는 설명 불가능한 다양한 증상으로 가득했다.

은비 사건의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에 참여했던 소라미 변호사는 “현행 입양 절차는 민간기관인 입양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은비 사건의 경우 어떠한 공적 개입 없이 입양기관장의 전권으로 이뤄진 민간 주도 입양의 대표적인 비극적 사례"라며 "입양특례법 개정을 통해 아동에 대한 입양 절차가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상세하게 규정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개선과 공정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동 중심으로 제도가 돌아가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한국의 입양제도가 민간 주도 모델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입양기관들이 정부의 제대로 된 감독을 받지 않은 채 입양을 진행하다 보니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과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이제라도 입양의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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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김상범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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