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가입대상국

‘정부가 입양과정 책임져라' 가입요건 충족 못해

해외입양은 아동에게 매우 위험한 과정일 수 있기 때문에 국제입양 아동의 안전과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1980년대 아동밀매, 납치, 불양입양 등 수많은 아동의 희생이 국제적인 스캔들로 번지자 국제사회는 국제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안전과 권리보호를 위한 새로운 협약이 필요하다고 결의한다. 이후 태어난 것이 헤이그국제입양협약(1993 Hague convention on protection of children and cooperation in respect of intercountry adoption)으로 장기간에 걸친 국제사회의 고민과 논의가 집대성돼 있다.

2013년 5월 2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중앙정부청사에서 열린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서명식에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협약서에 서명하는 모습. 이 서명은 가입준비절차일 뿐 실제 가입한 것은 아니다. 연합뉴스

그런데 최대 기간 최대 아동을 해외로 송출해온 한국은 이 협약이 만들어기 전부터 주요 아동송출국으로서 협약준비회의에 참여해왔고 협약이 만들어진 1993년부터는 가입대상국에 올랐지만 25년간 이 협약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협약 이행에 필수적인 국내법령의 정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경은 교수의 ‘국제입양에 있어서 아동 권리의 국제법적 보호’ 논문에 따르면 헤이그협약에선 국제입양 결정과 그 절차를 중앙당국이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먼저 아동송출국의 중앙당국은 아동에 대한 입양 적격의 결정과 국제 입양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제4조). 제5조에서는 아동수령국의 권한당국이 양친이 될 사람의 자격에 대한 심사, 아동이 입양국 입국과 영주 가능성을 확인할 것을 규정했다. 또 아동입양의 신청을 접수받고, 입양부모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 보고서를 아동 출신국 정부에 송부하고, 아동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입양요건이 적법하게 충족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입양 절차의 진행을 결정하고, 아동의 수령국 입국 및 영주를 위한 조치를 하고, 아동의 수령국 이동시 안전확보 및 입양부모 동반을 확인하고, 입양 이후 양육상황을 확인하는 것 역시 모두 각 중앙당국의 책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입양 전반의 과정을 정부당국이 아닌 입양기관이 도맡아 해왔기 때문에 현재 상태로는 협약에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처지다.

그나마 헤이그협약과 관련해 약간 진전된 제스처가 있었던 때는 박근혜정부 때인 2013년이다. 당시 5월에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가입 사전 절차인 서명을 했다. 이는 직전 해인 2012년에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입양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법원이 일정 부분 개입할 수 있는 제도로 바뀌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엔은 물론 국내외에서 헤이그협약에 가입하라는 권고 및 촉구가 쏟아지면서 가능했던 진일보였다.

그러나 한국은 이 때 서명만 했을 뿐 실제 협약에 가입한 것은 아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당시 서명은 가입의 사전절차일 뿐이어서 가입의 의미도 없거니와 법적 효력은 더더욱 없다. 헤이그협약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7년 3월 현재 한국처럼 사전절차인 서명만 한 국가는 네팔과 러시아뿐으로 현재 협약상황이 어떤지 표시하는 칸은 세 나라 모두 텅 비어 있다.

문재인정부가 과연 25년간의 ‘흑역사’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애초에 문재인정부는 2017년까지 헤이그협약에 가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정부는 따로 법안을 내지 않고 남인순 의원실이 준비하고 있는 입양특례법 전면 개정안에 보건복지부가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남 의원실이 제안한 전면개정안은 헤이그협약에서 요구하고 있는 수준의 입양절차를 담고 있지만 입양기관은 물론 국내 입양부모들의 모임인 입양홍보회까지 반대하고 나서 전망이 불투명하다. 입양시장 위축을 우려하는 입양기관과 ‘반입양세력에 당하지 않겠다는’ 입양부모회의 반대를 뚫고 가지 않으면 문재인정부 하에서도 헤이그협약 가입은 요원한 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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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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