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이 넘는 해외입양 역사를 가진 한국은 이제 자신을 되돌아볼 때가 됐습니다. 한국에선 충분한 수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지 않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있죠. 많은 한국사람들이 여전히 입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습니다. 입양기관들은 먼 곳에 있는 고객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고 아이들을 보내고 있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식의 해피엔딩을 생각하죠."

"한국 사람들이 입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그 아이가 얻게 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요. 새로운 가족, 더 나은 삶, 더 나은 미래요.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그건 마케팅을 위한 선전일 뿐이에요. 아무도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결코 알지 못합니다. 입양은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다른 삶’을 보장할 뿐입니다.”

시몬 은미씨는 어린 시절 네덜란드로 입양됐다가 어른이 된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쉼터 ‘뿌리의 집’에서 국제협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 개최된 남인순 의원의 입양특례법 전면 개정안과 관련한 토론회에 참석해 해외입양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도 했다. 지난 8~9일 그와 이메일과 메신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내보낸 아이들은 한국 국적, 한국 이름, 한국어를 배울 기회, 한국인이 될 기회를 잃습니다. 그들은 자기 가족과 출생국, 그들의 엄마를 잃습니다. 저는 한국인들이 딱 3초만이라도 가만히 서서 자신들이 내보낸 아이의 삶에 입양이 미친 영향을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잃은 엄마는 어떨지도요. 엄마가 아이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고 어쩌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더 쉬울 것입니다.”

해외입양으로 인해 아이들이 잃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시몬씨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는 답변이기도 하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백인으로 둘러싸인 환경에 살면서 자신의 외모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네덜란드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점을 어린시절부터 분명하게 인식했다고 한다. 학교에 갔을 때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만져 보려 했고 이 경험은 상당히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외국의 장관이 된 한국 출신 해외입양아’같은 환상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난 해 한국에 돌아와 14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미국 입양인 출신 필립 클레이, 친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왔다 김해 고시원에서 쓸쓸히 죽어간 노르웨이 입양인 얀의 이야기는 예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 봐도 해외입양인의 삶은 녹록치 않다. 부모, 친구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점을 일찍부터 인식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하고 이는 종종 사회부적응을 낳기도 한다. 해외입양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스웨덴에선 입양인 출신 청소년들이 마약에 중독될 확률,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을 확률, 범죄를 시도할 확률, 자살률 등이 또래보다 서너배 이상 높다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시몬씨는 입양인들이 겪는 개별적 삶은 물론 입양이라는 전체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저는 한국 사회가 입양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뿐만 아니라 입양정책에 대해서도 잘 알기를 바랍니다. 헤이그협약에 따르면 중앙당국이 모든 아동의 입양과정을 책임지도록 돼 있어요. 아동들은 특히 취약한 시민들이고 정부는 그들의 삶과 복지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여기에 아주 늦게 개입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제3자가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하고, 자국 아동들의 기본권이 무시당하게 놔뒀습니다.”

헤이그협약에선 중앙당국이 아동을 자국 내에서의 보호 방법을 검토한 후 해외입양이 아동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결정한 경우에 한해서만 해외입양을 하도록 하고 있다. 또 입양의 전 과정을 중앙당국이 책임지도록 못박았다. 이처럼 보충성의 원칙(해외입양은 가장 마지막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중앙당국의 책임이 헤이그협약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은 민간 입양기관 주도의 입양시스템을 유지해 해외입양 최소화를 위한 노력을 할 여지가 없었다. 해외입양 최소화를 위해선 원가정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이 역시 부족하다.

“한국에서 해외로 보내지는 아이들의 98%가 미혼모의 아이입니다. 한국 정부는 미혼모보다는 보육시설에 더 많이 지원하는데 바로 여기에 60년 이상 자국의 아동들을 떠나 보낸 이유가 있는 겁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키울 기회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와 머물 권리가 있습니다. 한국은 시스템을 바꿔 이것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홀트아동복지회를 선두로 한 민간 입양기관들은 입양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면서도 입양 위축을 우려하며 입양특례법 전면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마케팅에 많은 돈을 쓰고 홍보도 잘 합니다. 그들은 합정역에 이름을 병기하고 있는데 상당한 돈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5월에 죽은 채로 발견된 노르웨이 입양아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을 때 그들은 거절했어요.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으려고 했던, 한국이 잃어버린 아이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절실하게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했고 받아들여지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홀트아동복지회는 어떤 연민도 보이지 않았죠. 얀을 화장했을 때 그들은 얼굴도 비치지 않았어요. 애초에 홀트를 만들었을 때에는 분명 선한 의도로 만들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을 길을 잃었습니다. 홀트는 일을 그만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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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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