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인플레 대처에 달려 … 코로나 아닌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경제 좌우할 것"

올해는 글로벌 경제가 정부와 중앙은행 도움 없이 잘 헤쳐나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기이자, 인플레이션이 코로나19의 일시적 부산물인지 아니면 보다 지속적인 문제인지를 알 수 있는 시기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13일 "올해 글로벌 경제의 최대 위협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 인플레이션과 그에 대한 각국 중앙은행의 잘못된 대처"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가 경제전문가들을 조사한 결과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의 평균 전망치는 4.4%였다. 2021년엔 5.8% 성장이었다. 전문가 대부분은 '코로나가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2023년부터 경제성장률은 장기 평균인 3.5%로 수렴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실물경제 측면에서 비정상적이라는 점이다. 노동시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21년 말 기준 미국에서 최소 1000만명의 노동자가 부족했다. 레스토랑 매니저와 공장 감독, CEO들 모두 '노동자를 구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활동중인 노동자는 2020년 초 대비 최소 500만명 줄었다.

미국뿐 아니다. 지난해 11월 기준 영국은 100만명 이상 노동자가 부족했다. 2020년 초와 비교해 경제활동중인 노동자가 최소 60만명 줄었다. 임금이 오르지만 노동자를 구하긴 어렵다. 웨이터든 트럭운전사든 마이크로칩이든 크림치즈든 수요와 공급의 큰 불일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적인 현상이었다.

미국은 팬데믹 시작 이후 단 6개월 만에 GDP 20%가 하락했지만 1년이 지난 2021년 중반 손실분을 모두 회복했다. 역대급 경제반등의 최대 승자는 부동산과 주식을 가진 미국 가계였다. 지난해 중반 기준 미국인의 가계저축은 팬데믹 이전 대비 약 2조6000억달러 늘어났다. 미국 GDP의 12%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앙은행들의 판단 착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노동력 부족과 공급망 차질은 팬데믹의 단기적 여파라고 봤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 계좌로 지급되는 연방정부의 현금 때문에 많은 실업자들은 일터에 복귀할 뜻을 접었다. 중앙은행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고 봤다.

2021년 인플레이션 상승의 주요 원인이 에너지 비용 상승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같은 중앙은행들의 입장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들이 섣불리 나서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8%에 달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1981년 이래 최고치였다. 연준이 2021년 초 예상한 수치의 3배에 달했다. '일시적'이라던 연준의 설명은 12월 '오랫동안 상승할 수 있다,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재 금융시장은 연준이 올해 최소 3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영국중앙은행은 향후 수개월 동안 6%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있다. 영국중앙은행은 지난해 마지막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p 올렸다. 투자자들은 올해 4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10년 넘게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최근 '올해도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19개국은 영국이나 미국처럼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지는 않는다. 또 경제회복세도 미국처럼 왕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데이터에 따르면 유로존 소비자물가는 5%라는 기록적인 속도로 올랐다. ECB 역시 기준금리 인상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연준의 통화긴축은 기정사실이다.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연준 행보에 발 맞출 전망이다. 문제는 중앙은행의 긴축이 경제침체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오미크론 변종이 경제성장에 뚜렷한 악영향을 주겠지만 단기간에 그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코로나 감염 절정기가 반복되면서 경제적 비용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 사람들이 그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다루는 데 점차 능숙해지면서다.

오미크론은 이전 변종보다 감염력이 더 세지만 덜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감염 폭증은 경제적 활동을 단기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 결근 등이 잦아지면서다. 미국과 영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보면, 오미크론의 발현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 '엔데믹'(풍토병)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경제에 치명타를 안기는 봉쇄와 격리의 필요성이 줄어든다.

각국 정부의 부양책 감축에서 오는 타격은 무시하기가 더 어렵다. 미국 경제엔 2년 동안 1조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 부양책이 주입됐다. 대부분 현금 직접지급 형태였다. 골드만삭스 수석정치경제학자 알렉 필립스는 "정부 부양책이 사라지면 최소 GDP의 3%에 이르는 총수요가 하락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망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1조7500억달러 규모 인프라법안(Build Back Better)이 통과되는 걸 가정한 수치다. 10년에 걸쳐 진행되는 예산지출 사업으로, 2022년 경제성장에 0.5%p를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민주당 조 맨친 상원의원의 반대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의 회복탄력성

재정·통화정책의 반전이 글로벌 경제회복세를 꺾게 될까. 금융시장은 생각이 다른 듯하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지난해 말 약 150조달러 가치를 기록했다. 2020년 3월 이후 2배 올랐다. 미국 S&P500 지수는 연준이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당초보다 빨리 종료할 것이라고 선언한 날에도 상승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가계지출과 기업투자가 타격을 입고 연방정부 부양책이 줄어들겠지만, 미 경제는 올해 상반기 4.4%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반기엔 그보다 낮은 2.7%의 성장세를 내다봤다.

블룸버그가 성장을 낙관하는 한가지 큰 이유는 미국 소비자 대다수가 지출여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계좌에 있는 2조6000억달러 추가 저축이다. 블룸버그는 "이 저축은 가장 부유한 소수에 집중된 게 아니다. 저축의 약 2/3가 정부의 현금지급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미경제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애나 웡은 "2만4000~7만5000달러 연소득의 가족이 정례 지출을 줄이지 않고도 최소 두달 간 팬데믹 이전 지출을 유지할 여력을 갖고 있다"고 예상했다. 이 소득계층은 전통적으로 재정적 여유를 거의 또는 전혀 갖지 못한 그룹이었다.

미국경제가 통화긴축을 견딜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전세계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는 위험한 시장에서 자본이 빠져나와 기축통화국인 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신흥국들이 기준금리를 올려 자본이탈을 막느냐 기준금리를 낮춰 경제회복을 유지하느냐 하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신흥시장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지아드 다우드는 브라질과 이집트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 5개국이 특히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취약하다고 지목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신흥국 기준금리가 전반적으로 오를 것"이라면서도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들이 올해 4.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2021년보다 2%p 낮지만, 팬데믹 이전보다는 높은 수치다.

블룸버그는 "전세계가 연준의 긴축 충격을 떨쳐버릴 가능성이 가장 큰 이유는 ECB와 일본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당분간 최저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따라서 여전히 투자처를 찾아 전세계를 배회하는 많은 값싼 돈들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10년 만기 미국채 수익률에 반영된 장기금리가 연준의 단기 기준금리 인상계획에 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다른 포인트는 중국인민은행이다. 인민은행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연준과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는 대단한 일"이라며 "연준이 통화긴축에 나서려는 데 반해 인민은행은 부동산시장 침체 영향으로 고군분투하는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완화하고 있다. 이는 인민은행이 미국 연준과 달리 가겠다는 독립선언과 같다"고 전했다.

유럽의 경우 주요 불확실성은 에너지 비용과 정치상황이다. 유럽의 가스와 전기료는 기록적으로 오른 상태다. 프랑스의 핵발전소 폐쇄,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줄어든 탓이다. 이탈리아 총리 마리오 드라기는 유로존 정부들에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치된 행동에 나서자'고 촉구한다. 하지만 이미 많은 빚으로 재정여력이 없는 국가들은 드라기 총리의 촉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올해 4월 대선이 열리는 프랑스에선 에너지 위기와 코로나19 6차 파고 가능성이 중심 주제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현직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반면 이탈리아의 정치풍향은 다소 불확실하다. 드라기 총리는 지난해 12월 대통령에 도전한다고 선언했다. 이달 24일 상·하원 의원 등에서 투표를 시작한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유럽의 또다른 재정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가장 큰 국가로 여겨진다. ECB 총재를 지낸 드라기만큼 유로존에서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받는 이는 없다. 때문에 후임 총리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영국은 보리스 존슨 총리와 관련된 스캔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당내 쿠데타로 올해 축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온다.

정치적 리스크 컨설팅기업인 '유라시아그룹' 무즈타바 라흐만 유럽국장은 "존슨 총리가 올해말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4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의회선거가 예상되지 않는 상황이라 총리 교체가 영국 경제 향방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연준의 대처, 맞을까 틀릴까

글로벌 경제 향방을 지배하는 요소는 결국 전세계 총생산량의 1/4을 담당하는 미국이다. 투자자들은 올해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3번으로 예상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실업률과 핵심인플레이션에 대한 연준의 최근 예상을 기준금리 횟수에 대입할 경우 6번을 인상해야 한다고 본다. 6번 인상한다고 해도 올해 연말 미국 기준금리는 1%대 중반에 불과하다. 이는 인플레이션에 비해 '한참' 낮고, 팬데믹 이전 수준과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블룸버그는 "바이든행정부의 인프라법안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그정도 기준금리 인상만으로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면 놀랄 만한 일이 될 것"이라며 "올해 연말 연준에게 주어질 질문은 '연준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게 아니라 '연준이 제대로 한 게 맞느냐'는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전 재무장관인 래리 서머스는 "경기침체를 부르지 않고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힘든 지점에 도달한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여러 차례 바이든행정부의 코로나 부양책을 비판했다. 1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부양책이 경제성장 대신 인플레이션만 자극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지난해 봄 통과된 3번째 단기 부양책이 사실은 필요치 않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는 "서머스의 주장은 현재 시점에서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가계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3차 부양책이 통과된 시점에 팬데믹에 따른 미국민의 임금소득 부족분은 모두 복원됐다"고 지적했다.

다른 이들도 서머스에 동조한다. 알리안츠 경제고문이자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인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고 한 것에 대해 "연준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 분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시간당 임금은 전년 대비 5.8% 상승했다. 1980년대 초 이래 역대 3번째 높은 인상률이다. 임금과 혜택을 합치면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분기 상승률이다. 미국에서 임금과 물가가 동반으로 끌어올리는 나선형 상승이 일어난 지 40년이 넘었다. 미국 시간당 노동자 임금은 1980년대 이래 물가상승 가속화는 고사하고 인플레이션을 가까스로 따라잡는 수준이었다. 글로벌화와 노조가입률 하락, 자동화 증가 등에 따른 트렌드였다. 그렇다 해도, 지난해 하반기 수요의 엄청난 규모는 미국 인플레이션이 하룻밤 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블룸버그가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팬데믹으로 바뀐 노동과 지출의 방식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잠잠해지면 수요와 공급 동력이 예상보다 빠르게 과거의 표준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러면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장기적 목표인 2%로 복귀하기 시작할 것이다.

블룸버그는 "연준의 견해가 맞다면, 올해 목표는 미국 경제를 연착륙시키고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만약 연준이 틀렸다면, 2023년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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