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진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원장

테슬라 메타 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연이어 실리콘밸리를 떠나고 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제일 열악한 수준의 캘리포니아 기업규제 때문이다. 이들은 환경 노동 관련 규제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R&D투자에 대한 세금감면 등 기업환경이 미국에서 가장 좋은 텍사스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있다.

싱가포르와 이탈리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분류한 선진경제권(Advanced Economies) 국가이지만 경제성장률은 대조적이다. 싱가포르 경제가 지난 10년간 28.3% 성장하는 동안, 이탈리아는 불과 1.4% 성장하는 데 그쳤다.

세계 경제자유도 조사에 따르면, 두 국가의 가장 극명한 차이는 기업규제 수준에 있다. 이탈리아의 친기업규제 수준은 10점 만점에 6점대로 최하위권인 반면, 싱가포르는 9점대로 대상국 중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일례로 싱가포르는 아시아 최저 수준의 법인세율, 법인신청부터 설립까지 평균 1.5일의 짧은 창업 인가 기간, 아시아 최초의 규제샌드박스 제도 활성화 등 창업 친화적 규제개선을 적극적으로 실시해 왔다. 그 결과 국가 주력산업인 금융, 마이스(MICE)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핀테크 같은 첨단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을 3800개사 이상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규제샌드박스 제도, 6000명 일자리 창출

필자는 1993년 제정된 '기업활동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 입법작업에 실무자로 참여한 바 있다. 60여개 개별법에서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행정규제에 대한 특례를 규정한 혁신적인 입법이었다. 그러나 입법 과정에서 부작용을 우려한 관계부처의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시행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계속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반면 2019년부터 시행된 규제샌드박스 제도는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에 적용될 제도가 없거나 현실과 맞지 않은 경우, 규제특례를 받아 실증사업을 하면서 실증과정에서 얻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련 규정과 제도를 마련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은 관련 제도의 정비를 기다릴 필요 없이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고, 규제부처 입장에서는 입법을 먼저 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실증과정에서 먼저 검토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간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디지털 헬스케어, 자율주행 로봇, 모바일 운전면허증, 비대면 실명확인 등 신산업 분야에 4조8000억원의 투자와 60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한 바 있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규제를 운영하는 부처나 공무원의 입장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예컨대 담당 공무원들의 관점에서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위험부담과 규제완화로 인해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과감한 면책이 필요하다.

나아가 규제완화 성과에 대해서도 제안부처뿐 아니라 이를 수용하는 관계부처를 아우르는 적절한 평가와 보상이 이뤄진다면 '규제완화'가 탄력을 받아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다.

규제완화 성과에 대한 적절한 보상 필요

모쪼록 4차산업혁명 시대, 점차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는 우리 기업환경 속에서 새 정부가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확대·발전시켜 신산업 육성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디딤돌로 활용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