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했다. 사내의 한마디 말은 천금보다 무겁다는 뜻이다. 이 경구도 요즘 시대에는 듣기 불편하다. '남아' 빼고 그냥 '일언중천금'이면 족하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고도 한다. 장삼이사도 그런데 지도자의 말은 만냥만금 가치이겠다.

실제로 지도자가 불쑥 내던진 말에 수천만명이 생명을 잃기도 한다. 바로 "참새는 해롭다"는 지도자의 정의(定義)가 초래한 대참사이다. 1955년 중국의 대약진운동 시절이다. 농촌 현장지도에 나선 마오쩌둥 주석이 참새를 가리키며 말한다. "참새는 해로운 새다(麻雀是害鳥)."

며칠 후 14개 성(省) 당서기들이 '전국농업발전강요'를 발표한다. 전문 제27항이 '제사해(除四害)'로 1956년부터 쥐 파리 모기 참새 등 4종을 박멸하자는 내용이다. 참새를 퇴치하는 방법도 기발했다. 나뭇가지나 지붕 어디에도 앉지 못하도록 계속 쫓자는 거다. 그러면 탈진해 죽거나 지쳐서 땅에 떨어질 것이란 계산이다. 이를 위해 "새총을 쏘고, 새총이 없으면 징을 울리고, 징이 없으면 세숫대야를 두드리고, 이마저 없으면 목청껏 함성을 지르라"고 지도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1958년 한해 2억1000만마리의 참새가 사라졌다. 당시 상하이시는 "단 한차례 전투에서 136만7440마리를 제거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전국에서 거의 멸종위기에 이른 셈이다. 최고 존엄이 기침하니 당(黨)은 독감에 걸리는 식이다.

'대약진 아사' 부른 마오쩌둥의 한마디

현재 한국에서는 "MBC 보도는 가짜뉴스다"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의가 안팎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서 취재제한을 모색하고 방송의 소유구조 변화까지 거론한다. 본디 권력과 언론은 긴장과 갈등이 본연의 모습이다. 순치와 굴복을 강요하면 민주주의의 파국이다.

참새 박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전개로 이어졌다.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떼가 창궐했다. 비록 가을철엔 곡식을 훔치는 해조일지라도 봄 여름에는 농사를 망치는 곤충들을 잡아먹는 익조(益鳥)였다. 인간이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각종 해충, 특히 메뚜기가 중국 전역을 뒤덮었다.

1959년 이후 3년 동안 기록적인 흉년이 발생해 공식발표 2000만명, 학계 추산 3000만명이 굶어 죽었다. 흉년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참새 박멸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소동은 마오가 참새 박멸에 대해 "됐다(算了)"고 말하면서 끝났다. 중국 공산당은 구소련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부탁, 연해주에서 참새 20만마리를 공수해 농촌에 풀었다.

언론을 손보려는 것처럼 보이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하기 어렵다. 지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윤 대통령 아닌가. 검찰총장 시절 한겨레신문이 1면에 사과문을 싣도록 해 '뚝심의 1승'을 올린 전력도 있다. 잘못 인정과 사과도 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듯한 사안의 처리와 대응으로 미루어 봉합보다는 승부를 내려 할 듯하다.

하지만 '자유'를 강조하는 윤 대통령 아닌가. 취임식 연설에서 35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 제77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21번이나 자유를 언급했으니 이쯤 되면 '자유 대통령'이라 칭할 만하다. 그런데 언론자유와 맞서려는 듯한 모양새는 이해하기 힘들다. 주인인 국민의 눈과 귀가 아닌가.

형사재판과 관련된 법조인들은 종종 스스로를 장자(莊子)의 '우물 속 개구리'로 비유한다. 구속(拘束)이란 용어가 핵심이어서다. 내용인 즉 "우물 속 개구리는 바다를 이해하지 못한다. 장소에 잡혀 있어서다(拘於處). 편협한 선비에게 도(道)를 말할 수 없다. 배운 것에 묶여 있어서다(束於敎)."

현대 한국에 적용하면 범죄 피의자가 아니라 법률가들이 서초동과 법률지식에 구속돼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을 세상의 중심으로, 법학을 학문의 근본으로 여기니까.

역대 대통령들을 줄줄이 구속했으니 정치쯤이야 모를 것 없고, 재벌 총수들도 굴비 엮듯이 구속했으니 경제쯤 손바닥이라는 자신감을 보이는 것 아니겠나. 실제로 사법부와 입법부에 이어 행정부 수반과 요직도 판검사 출신이 장악하고 있으며, 대장동 '50억 클럽'도 면면이 법조계 인물이다.

서초동 벗어난 윤 대통령이 해야 할 말

하지만 서초동을 벗어난 윤 대통령이다. 훗날 역사에서 경제나 외교, 화합이나 능력이란 관형어가 붙는 대통령이 되기엔 사정이 녹록지 않다. 오히려 전직 대통령과 거물 정치인을 가장 많이 넣은 '구속(혹은 검찰) 대통령'으로 불릴 가능성이 크다. 자신이 강조하던 '자유 대통령'으로 불리고 싶다면 자유에 좀더 '진심'일 필요가 있겠다.

다른 것 없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기한 4대 자유를 곱씹어 보면 된다. 언론과 종교의 자유, 궁핍과 공포로부터 자유다. 이를 실천하고 구현하면 국사를 넘어 세계사에 기록될 수 있겠다. 경제부국 문화강국도 좋겠지만 "자유에 진심인 나라"도 자랑스럽지 않나. 우물 안은 잊어라. 법전도 덮어라. 윤 대통령도 이제 "됐다"라고 말할 때다.

박종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