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우리 사회 전체를 요동치게 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법체계와 규정이 파격적이고 외국에서도 유례가 없는 법인만큼 우리 사회에 던져 주는 메시지는 어느 법보다도 많은 것 같다.

이 법 시행 후 외형적으로 어느 때보다 안전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투자가 많이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일견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과 공기업은 앞 다퉈 안전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면에서는 안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중대재해법 미적용 기업은 사고사망 준 반면 적용 기업은 사고사망 증가

중대재해법 미적용 기업에선 사고사망이 감소한 반면 적용 기업에선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것은 이 법이 사고사망 감소에 기여하기는커녕 되레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방증이다. 더군다나 이 법이 시행되기 전 5년간 산재예방 행정인력·예산이 비대할 정도로 늘어난 상황에서 거둔 초라한 성적은 이 법이 중대재해 감소에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중대재해법을 지켜라!" | 26일 서울 종로 4.16연대 강당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및 생명·안전 위기에 대한 산재·재난 유가족과 피해자, 종교·인권·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사고사망뿐만 아니라 질병사망과 전체 재해가 크게 늘어 난 것도 이 법의 또 다른 살풍경이다. 사고사망에만 집중하다 보니 질병사망과 일반재해 지표가 더욱 나빠진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반짝 효과조차 없는 단기적 부작용도 문제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업들의 안전역량에 미치는 부작용이 더 큰 걱정이다. 신의 한 수인 것처럼 환호 속에 탄생한 이 법의 가성비가 낮은 이유는 뭘까?

법 시행 1년, 처벌은 단 1건도 없어

예방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정형을 올리는 것만으론 재해감소 효과는커녕 처벌강화 효과도 거두기 어렵다.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이 지났건만 처벌이 이제껏 단 한 건도 없는 것은 예방시스템이 엉성한 것에 큰 이유가 있다. 전문가마다 해석이 다르고 정부조차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는 예방기준과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행정조직으론 형식적 대책만 남발되고 실제 처벌로는 이어지기 어렵다.

'중대재해법령 개선 TF' 발족식 |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 발족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고용노동부 제공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12월말까지 기소된 11건 모두 중소기업이라는 것은 이 법이 대기업에 대해선 위력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소기업 사장은 종전에도 처벌돼왔다는 점에서 이 법이 제정 의도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를 예견하지 못했다면 무지이고 알고서도 방치한다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안전 문외한 로펌·컨설팅기관에 아웃소싱, 돈벌이 수단 전락

경영책임자에 대한 엄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중대재해법 제정은 산재예방의 기본법인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대한 기업의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안법도 온전히 준수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중대재해법이 훨씬 위협적이다 보니, 산안법의 처벌에 대해선 둔감해져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기본을 갖추는 일보다 겉멋을 부리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가 돼버린 것이다. 많은 기업이 차근차근 안전역량을 쌓아나가는 일보다 눈앞의 일에 매달리는 이유다.


법규의 형식적 준수가 조장되고 있다. 중대재해법을 발등에 떨어진 불로 생각하다 보니, 법위반이 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기준을 준수하는 데 급급하고 이를 상회하는 자율안전관리는 사치나 한가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 게다가 처벌의 빌미가 될 수 있는 적극적인 안전관리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중대재해법이 기업의 자율적인 안전활동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실질적인 안전역량이 약화되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 안전에 문외한인 로펌과 컨설팅기관에 다분히 처벌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안전을 아웃소싱 하는 일이 만연돼 있다. 중대재해법이 이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장삿속과 어설픈 지식이 재해예방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맹목적 서류작업 양산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이는 안전관리에 대한 냉소와 체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태만보다 무서운 것이 냉소와 체념이다.

재해예방에 무익한 외부기관의 과도한 의존에 헛돈이 쓰이고 아마추어가 전문가 행세하는 혼탁해진 안전시장이 하루빨리 정화돼야 하는 이유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안전부서 중심의 기형적 안전관리가 보다 심화되고 있다. 조직 전체의 시스템적 안전관리가 되지 못하고 안전부서 위주의 안전이 강화되면서 안전을 실천해야 할 현업부서는 안전으로부터 뒷짐 지고 안전부서와 분절되고 있다.

이 법이 오로지 경영책임자 처벌과 외형적인 안전조직·인력만을 강조하다 보니, 전사적인 안전관리의 원칙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생색내기에 좋은 안전부서 늘리기로 치닫고 있다. 안전관리라는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안전 원리에 맞지 않는 법으로는 재해예방의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이다.

최고경영책임자 '형사처벌 회피'에만 급급

역설적으로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CEO)를 안전문제에서 뒤로 물러나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CEO를 처벌에서 면하게 하기 위해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전면에 나서면서 안전원리가 뒤틀리고 있다.

수사기관에서 어떻게든 CEO를 형사 처분하려고 하다 보니, 기업에서는 안전보건관리체제를 '안전원리'에 맞추는 게 아니라 '형사처벌 회피'에 맞추고 있다. 안전관리가 방향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용노동부가 처벌에 과도한 행정역량을 쏟아 부으면서 예방지도활동은 위축되고 있다. 행정인력·예산이 유례없이 대폭 증가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불기소나 무죄가 속출할 경우 수사 인력의 수고가 헛발질로 끝날 공산도 적지 않다.

중대재해 발생 기업들은 수사기관의 막무가내식 자료요구와 경영책임자 소환에 대응하느라 예방활동할 시간이 태부족해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과도하고 거친 수사가 예방을 소홀하게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법의 목적, 실효성이지 처벌 아니다

중대재해법의 이러한 여러 부작용은 법 시행 전부터 이미 예견됐다. 적용대상 기업에서 산업재해가 전반적으로 늘어난 것은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난 것뿐이다. 이 법 맹신론자들은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공자가 역설했듯이 "잘못이 있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잘못이다."

진정한 배움은 무지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이 법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면서 고치는 것을 거부하거나 고치는 척만 하는 것은 재해예방에 역행하는 처사다. 법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면 근본에서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법의 목적이 실효성이지 처벌은 아니지 않은가.

법 제정이 선의였다는 주장만을 내세우기에는 안전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지금은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것처럼 일차방정식을 푸는 때가 아니다. 수많은 변수가 어우러져 있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때다.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는데도 선의에만 기댄 채 스스로의 오류를 알지 못하는 현상(더닝-크루거 효과)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지는 지식보다 확신을 갖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영국 속담을 새삼 강조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