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자간담회 자리서 수차례 언급

대중교통 요금인상폭 완화 명분 찾기

"정부에 공 넘기되 협력 길 터놓은 것"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인상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획재정부를 콕 짚었다.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30일 오 시장은 시청에서 출입기자들과 신년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관심을 끈 대목은 오 시장이 간담회 도중 수차례에 걸쳐 기재부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오세훈 시장이 30일 서울시청에서 출입기자들과 신년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그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폭을 조절할 계획이 없냐는 질문에 "전제조건은 기재부가 입장을 바꾸는 것"이라고 답했다. 오 시장은 "지금이라도 기재부가 생각을 바꿔 올해 중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한다면 지금 논의 중인 요금인상 폭을 조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 시장이 공공요금 인상과 관련해 정부를 겨냥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해 국회의 예산 통과 과정에서 정부가 지하철 무임수송 손실 비용을 지원하지 않으면 내년에 요금 인상을 검토할 수 밖에 없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들과 오 시장 주변 인사들은 그때와 지금, 오 시장의 발언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역대 서울시장이 정부와 각을 세우는 일은 흔히 있었다. 하지만 오 시장은 정부를 직접 겨냥하는 건 피했다. 대신 '기재부'를 겨냥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벌써부터 정부와 각을 세워 좋을 것이 없고 또 실제 목표했던 결과를 얻는데도 정부 전체를 겨누기보다 타겟을 좁히는 게 (목표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타겟은 기재부로 좁히되 여지는 남겼다. 시 관계자는 "기재부가 지금이라도 나서면 요금인상 폭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예산 확보 기한을 '올해 안'으로 크게 넓혀놓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예산 철'이 아니다. 기재부가 지원에 나서려 해도 방법이 없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기재부가 무임수송 비용 지원에 나설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충분한 협상 여지가 있으니 이제라도 상생의 길을 찾자는 신호를 줬다는 것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서울시가 당초에 3580억원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지만 지금은 향후 (관련 예산) 정부 지원의 물꼬를 트기 위한 마중물 성격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수백억원이라도 정부가 지하철 무임수송비용지원 의사를 밝힌다면 요금인상 조정 논의에 착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선 오 시장이 이 같은 메시지를 행간에 숨긴 이유를 서울시와 정부의 상생을 위한 전략적 행보라고 평가한다. 시와 정부 모두 여론 비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서민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인상은 서울시는 물론 현 정부에도 부담이 적지 않다.

이미 뱉어놓은 말이 있는 오 시장 입장에선 기재부 입장 변화 없인 요금인상을 뒤집기도 어렵다. 협상 여지를 최대한으로 남긴 채 기재부 입장 선회를 촉구하고 이를 계기로 여론 비판이 큰 요금인상 조정에 나서자는 게 오 시장 속내라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날 여의도 금융특구와 관련해서도 기재부 역할을 주문했다. 서울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서울의 금융경쟁력을 높이는데 국책은행 유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재부가 나설 경우 상황은 변할 수 있다는 게 시 관계자들 관측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국토 균형발전 측면에서 의미를 갖는 사안으로 서울시가 반대하는 것은 수도권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기재부가 여의도 금융특구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서울시가 양보할 명분을 준다면 산업은행 이전에 대해 전향적 입장이 나올 수도 있다"며 "이 또한 기재부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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