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성 서울대 교수 정치외교학부

북핵문제는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북핵문제는 공산권의 패배로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단극질서가 형성되면서 북한이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본질이다. 북한문제는 국제정치구조의 일부분이므로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단극체제가 약화되고 미중 전략경쟁 체제가 강화되면서, 북핵문제와 북한문제도 새로운 성격을 가지게 된다.

북한은 국제정세가 신냉전에 돌입했다는 희망 섞인 선언을 하면서 핵을 가진 강대국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를 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연이은 핵, 미사일 개발에 이어 군정찰위성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이러한 북한의 전략을 뒷받침한다.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과 워싱턴선언은 대북 군사억제를 강화하고,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정권이 종식될 것이라고 강한 억제의 발언을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뒤이은 담화에서 북한정권의 종식이라는 표현을 놓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은 다층적이다. 북한이라는 정치체의 군사적 안전을 의미하기도 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체제의 보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백두혈통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리더십과 김정은 위원장 개인의 안보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워싱턴선언을 통해 미국은 북한의 핵 사용이 김정은 개인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최대의 억제효과를 추구한 것이다.

문제는 미국 외교정책 순위에서 북핵문제가 여전히 높은 순위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고, 경제상황 개선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전쟁, 중국과의 전략경쟁, 기후변화와 같은 초국가 문제 등 수많은 외교 이슈에 당면해있다.

중국 역시 시진핑 3기 체제의 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 대미 전략경쟁 및 러시아와의 관계 조정,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장 등 시급한 사안들이 산적해있다.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의 비핵화를 중요한 외교의제로 언급하지 않는다. 북중관계를 통한 한반도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할 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증강이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외교적 딜레마를 심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국의 정책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북의 핵 포기 유인책 구체화할 필요

남북 간 군비경쟁과 상호억제체제가 유지되고, 미중 간 치열한 지정학 경쟁 속에 오랫동안 한반도가 놓이게 된다면 북핵문제는 더욱 장기화될 것이다. 향후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떠한 전략적 방향을 추구해야 할까?

첫째, 북한은 물론 주변국들이 현상유지에 대한 강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 주도권은 여전히 한국이 쥘 수밖에 없다. 대북 군사 억제와 경제제재가 비교적 굳건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북한의 핵 보유 비용을 증가시키고, 비핵 리더십의 이점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핵을 보유하는 것은 국제사회와 한국뿐 아니라 북한 스스로에게도 패배의 길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포기를 위한 조건은 다층적 안전보장의 제공과 핵 포기 이후 북한의 경제발전 전망에 대한 구체화 작업이다.

윤석열정부는 '담대한 구상'을 통해 북한의 핵 포기 시 경제적 유인을 제안한 바 있지만, 정치적 군사적 안전보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사회의 대응구조에 대해서는 명확한 밑그림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체제가 더욱 긴장되고 대립적으로 변화하기 전에 북한의 핵 포기 조건을 가시화할 수 있는 유인책을 구체화해야 한다.

미중관계 변화 살피며 틈새 찾아야

둘째, 미중관계의 변화 추세를 예민하게 분석하고, 그 가운데 북핵문제의 해결 가능성의 틈새를 찾아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한국의 대중전략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한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작년 말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도 그 일환이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대중 봉쇄전략이라고 명시하면서 한국의 외교정책을 비판적 눈초리로 보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국제 경제제재를 우회할 수 있다면 북한에 대한 압박은 불가능하다.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북한을 지정학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고, 비핵화 노력이 미국에게만 득이 되는 사안이라고 본다. 핵 비확산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지만 여타 사안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과의 사안별 협력은 신뢰성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모든 사안에 걸친 미중갈등과 경쟁은 무한정 지속될 것인가? 미중 전략경쟁 양상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APEC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천명하고 5년이 지난 현재 변화하고 있다. 작년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미중관계는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최근 G7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중 고위급 관계자들은 양국 간 관계 개선 및 외교 복원을 언급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중국에 대한 건설적 관여와 책임있고 건강한 경쟁관계를 대중전략의 목표로 내세웠다. 관계단절(decoupling)이 아닌 위험감축(de-risking)과 다각화(deversifying)를 중요한 대중전략의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G7 정상회담에서도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현상변경 시도에 대해서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경제적 상호관계를 인정하고 공통의 문제해결을 추구하며 외교를 통한 차이 극복의 경로를 제시했다.

이러한 관계 변화는 한국의 대중전략에 중요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군사 안보 경쟁 및 첨단 핵심 분야의 기술 탈동조화와 수출통제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관계가 지속되는 가운데 외교 분야 협력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 핵비확산의 문제는 미중 간 오래된 협력 이슈로서 향후 미중 정상회담 및 고위급 회담에서 협력 사안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다. 북핵문제를 세계적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 정의하고 한미중 간 협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차원의 노력을 회복할 수 있다.

미국의 중국 핵군축 시도가 기회될 수도

셋째, 북핵문제 해결에서 북미관계가 핵심인 만큼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전체의 변화 양상을 주시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강대국 간 핵경쟁을 수행하는 미국 입장에서 북핵이 유일한 위협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이미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공언했고,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를 결정했으며, 미국과 전략핵무기 감축 조약인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현재 300여개의 핵탄두를 2030년까지 1000개까지 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서부 지역에 대륙간탄도미사일 저장고를 구축하고 있으며, 핵무기 운반 수단도 현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제 중국과의 핵무기 경쟁 및 핵군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북한의 핵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중국의 핵무기 증강을 앞에 놓고 북핵 위협에 총력을 기울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중국과 상호확증파괴의 위협 인식에 도달한다면 비대칭적인 핵전력 균형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군비통제를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동맹국인 북한의 핵무기도 중요한 이슈로 함께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미중 핵경쟁이 북핵문제에 미칠 연결고리를 철저히 분석해 한반도의 안전과 북한의 비핵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