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18일(현지시간) 미 대형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났다. CNN에 따르면 옐런 장관이 만난 사람은 JP모건체이스 제이미 다이먼, 씨티그룹 제인 프레이저 CEO와 미 은행정책연구소(BPI, Bank Policy Institute) 고위 관계자 등이다. BPI는 대형은행 CEO들이 이사로 있으며 이들 은행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연구·정책·로비그룹이다. 옐런은 이 자리에서 "은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는 추가적인 은행 합병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만남과 발언 등을 통해 우리는 미국 은행들의 상태에 대해 두가지 시그널을 읽을 수 있다.

미국 가상자산 특화 금융기관이었던 시그니처은행(Signature Bank), 자산순위 16위인 실리콘밸리은행(SVB), 14위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C)의 연이은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위기가 거의 잦아들었다는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여전히 불안함이 남아있다는 것을 행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미 은행 시스템의 문제는 연준의 정책에 변화를 주고 달러 통화 시스템에 연결돼 있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미 은행시스템에 지방 중소형 은행 불안감 여전

연준이 제공하는 H.4와 H.8 데이터는 미국내 은행을 자산 규모로 상위 25위(대형은행)와 그 아래는 소형은행으로 분류해 현황을 보여준다. 최근 소형은행들에서 은행간펀딩시스템(BTFP)과 재할인창구(Discount Window)를 통해 급전을 빌려가는 등 문제가 있어 보인다. 3월 22일 은행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1648억달러에 달했던 이 지원금액은 5월 1일 JP모건의 FRC인수가 발표되면서 5월 3일 811억달러로 급감했다. 그러나 이후 지방 소형은행들의 위기설이 퍼지면서 5월 17일 961억달러로 늘었다. 증가폭이 줄기는 했지만 은행위기의 다음 희생자로 거론되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은행 팩웨스트뱅코프(PACW) 등에서 급전을 또 빌려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뱅크런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옐런은 이런 상황을 고려, 위기 경계선에 서 있는 은행들을 미 연준이 전면에 나서고 정부 예산으로 구제하기보다 민간 대형은행들이 인수 합병함으로써 위기도 막고 구제금융을 제공한다는 정치적 공세도 피할 심산으로 '은행 합병'을 꺼낸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 미 규제당국의 시각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강한 은행이 약한 은행을 인수해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금융안정으로 더 큰 이득을 준다는 것을 체득했다고나 할까. 이때 기회를 잡은 사람이 JP모건의 다이먼 회장인데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해 확고한 1위은행으로 자리를 굳혔다. 워런 버핏도 2008년 부실은행 메릴린치와 서브프라임 사태의 와중에 주택담보대출기업인 컨트리 파이낸셜 등을 떠안아 위기를 겪던 뱅크오브아메리카(BAC)를 "나는 미국주식을 사고 있다(Buy American, I am)"고 외치며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파월 연준 의장은 2013년 연준위원으로 근무할 때 '대마불사의 종료'라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는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0~1993년까지 미 재무부에서 근무하면서 1980~1990년대 저축대부조합사태(S&L)와 당시 미국 역사상 세 번째로 큰 은행파산 사건인 1991년 뉴잉글랜드은행 뱅크런 사태를 처리한 경험으로부터 배운 교훈들에 대해 정리한 내용이다. 이때 예금보험공사(FDIC)가 개입해 파산정리 절차 등을 시행했는데 이번 연준의 신속한 SVB 파산 정리는 이때의 모델을 따른 것이다.

S&L 사태나 뉴잉글랜드 사태의 원인도 폴 볼커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고금리정책에서 비롯됐다. '다음 차례는 누구냐'를 찾는 마치 빙고게임 같은 미국 은행 사태 희생양 후보들은 PACW 외에도 웨스턴 얼라이언스(WAL) 자이언스뱅코프(ZION) 키코프(KEY) 등이 거론되는데 주가가 거의 50~70% 떨어진 상태다. 물론 PACW는 26억달러의 부동산 대출 포트폴리오를 매각하는 등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준은 5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상업용 부동산 대출(CRE)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미 연준 금융안정보고서 통해 상업용 부동산 대출 위험 경고

은행파산이 또 일어난다면 이번의 구원투수는 이미 FRC를 챙긴 JP모건은 아닐 확률이 높고, 구조조정 중인 씨티는 손사래를 칠 듯하고, 4위 웰스파고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문제 등으로 여력이 없어 아마 버핏의 BAC가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한다.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 포트폴리오에서 BAC와 씨티만 남기고 뱅코프뉴욕멜론, US뱅코프 등은 이미 정리했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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