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과 진학,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서울 동대부여고 학생들은 3년간 80개 과목 중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는다. 학교가 전면 개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일반·진로선택 과목은 물론, 선호도가 높은 교양 또는 예술체육 과목도 여럿이다. 특목고나 특성화고에서 배우는 전문교과는 정규과정 외 추가로 이수하는 자율과정에 자리 잡았다.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최대한 수용하면서, 과도한 부담은 갖지 않도록 한 학교의 지혜가 엿보인다.
열린 교육과정 안에서 학생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스스로 선택한 과목 학습에 최선을 다한다. 폭넓은 선택권이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이어지고, 진로 설계나 학습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이는 다시 학생의 역량을 높이고 입시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올해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선정돼 일반고의 역할 모델로 주목받는 동대부여고를 찾았다.

서울 동대부여고 학생들은 3년간 80개 과목 중 원하는 과목을 골라 듣는다. 학교가 전면 개방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사진 동대부여고 제공


동대부여고는 2019년 이후 진로교육, 수업·평가 혁신, 일반고 교육역량 제고 등 다양한 성과를 인정받아왔다. 이는 수업 개선과 진로·진학 교육을 강화해 학생 선택을 최대한 보장하는 개방형 교육과정에 도전하는 바탕이 됐다.

새 교육과정에 박현숙 교장은 추진력을 더했다. 박 교장은 서울지역중등교육과정연구회와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교육과정·진학 분야 전문가다. 박 교장은 부분 개방형으로 운영되던 교육과정을 전면 개방형으로 방향을 바꾸고 교사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동대부여고 전경. 사진 동대부여고 제공

2021학년 입학생 기준 2학년 때 12개 과목 중 6개, 3학년 때 21개 과목 중 7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일반·진로선택 과목에 속하는 보통 교과가 대부분이다. 다양한 과목을 제공하지만 정규수업은 보통 교과에 무게를 둔 것이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공유 캠퍼스 과목으로 '물리학실험' '화학실험'을 제공하고, 추가로 이수할 수 있는 자율 과정에 '문학개론' '심화영어Ⅰ·Ⅱ' '국제경제' '공중보건' 등 전문교과 Ⅰ·Ⅱ 위주의 14개 과목 중에서 몇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일반·진로선택 과목 중심 편성 눈길 = 최근 특목고에서 배우는 심화과목을 정규수업에 편성하는 일반고가 늘고 있다. 대입 수시에서 선택과목을 눈여겨보기 때문이다. 전문교과는 진로선택 과목으로 취급돼 등급이 산출되지 않는다. 성적에 대한 부담이 적고 이수 이력만으로 학업 역량을 드러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교과 중심의 동대부여고의 교육과정은 눈에 띈다.

동대부여고 전경. 사진 동대부여고 제공

교육과정 업무를 맡고 있는 김용진 교사는 "일반고의 특성과 대입 체계를 고려했다"며 "전문교과 과목은 자율 과정 등에서 별도로 제공해 필요한 학생들만 선택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교과 중심의 개방형 교육과정은 다른 면에서도 장점이 됐다. 수업의 질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민경 교무부장 교사는 "전문교과 과목이 정규수업으로 들어오면 과목 수가 지금보다 더 늘고, 그만큼 학생도 분산돼 소인수 과목이 증가한다"며 "외부 인력을 활용하는 데 제약이 많아 한정된 교내 교사들이 여러 과목을 진행하게 돼 수업의 질을 담보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보통 교과 중심으로 칸막이 없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니 소인수 과목이 많지 않다. 실제 교사들의 학기당 담당 과목은 개방형 교육과정 운영 전후 큰 차이가 없다. 자기가 맡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김용진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을 선택해서 들으니 학생·교사 모두 책임감을 갖고 수업에 임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입 제도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용진 교사는 "정시확대 이슈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정시선발 인원을 늘린다고 하니 수능 출제 과목을 중심으로 공부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인 수능 경쟁력을 따져 내린 결론이 아니라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큰 경우도 많다. 이런 목소리가 커지면 어렵게 새로운 방향으로 발을 내디딘 학교 교육이 후퇴하게 된다는 걱정이다.

자기 점수가 아닌 다른 학생의 점수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결과 중심 대입전형의 확대가 선택을 강조하는 개방형 교육과정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다양해지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 = 교육과정이 달라지면서 교사들은 선택 과목에 대한 정보, 그리고 진로교육을 돌아봤다. 학생들이 자신의 선택권을 올바로 쓸 수 있도록 유도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정확한 정보와 꾸준한 소통에서 답을 구했다.

과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6월에 제공한다. 학년별로 온라인 교육과정 설명회를 열어 특성, 선택기준 등에 대해 안내한다. 담임교사나 각 과목 교사, 진로진학상담교사는 학생들과 수시로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의 전공이나 적성에 맞는 과목을 찾도록 돕는다.

김용진 교사는 "올해는 아예 우리 학교만의 선택과목 안내책자를 따로 만들어 배포한다"며 "우리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과목들을 중심으로 평가계획까지 담았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에게 안내하는 가이드라인은 특별하지 않다. "자연 계열 성향이라면 과학Ⅰ 과목들을 충분히 들어두면 좋다" "공대를 희망하면 '미적분' '기하' '물리학Ⅱ' '화학Ⅱ' 등을 들어야 하니 그에 맞춰 선 이수 과목을 고려해 선택하라" "인문사회 계열 전공을 원한다면 국어와 영어를 깊게 배우고 사회 과목을 두루 이수하라" "보건 계열은 '생명과학Ⅰ·Ⅱ' '화학Ⅰ·Ⅱ'와 윤리 관련 과목에 관심을 가져라" 등 희망 전공과 관련성이 큰 과목을 안내하고 학생의 선택에 맡긴다.

이렇게 하니 학생들이 선택하는 '경우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올해 고3 재학생은 207명인데 선택과목의 조합은 135개에 달한다. 김민경 교사는 "작년보다 학생수가 적은데 과정 수는 더 많다"며 "과목당 평균 학급수도 지난해 7~8개에서 올해 4~5개로 줄어 다양하게 선택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김용진 교사에 따르면 처음엔 선택권을 줘도 지망 전공 계열에 따라 특정 과목에 학생들이 쏠렸다. 지금은 인문·사회 계열 전공을 희망하면서 '고급수학Ⅰ' '프로그래밍'을 듣거나, 공대를 지망하면서 '경제' '세계사'를 듣는 학생이 늘고 있다.

어려운 과목인데도 필요할 것 같아 도전하거나 입시와 상관없이 본인의 흥미를 위주로 선택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약대 진학을 희망하면서 등급이 나오고 인문계열 성향 상위권 학생들이 많은 '경제'를 선택하는 학생이 있다. 미대 입시와 관련된 '미술 전공 실기' '드로잉' 중 '드로잉'만 듣는 사례도 나왔다. 미대에 진학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이 있어서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성적이나 난도, 입시를 따지지 않고 배우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변화다. 선택권을 보다 더 넓힌 고교학점제로 나아가는 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호성 정나래 내일교육 기자 lena@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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