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시간·프로그램' 직업능력개발 활성화 방해 요소 … 전생애 학습수요 맞게 제도 정비해야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국제연합(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121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확대되면서 디지털 경제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 저탄소·디지털 경제 전환은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산업구조 변화 과정에서 신산업·신기술 분야 일자리는 늘어나지만, 고탄소·노동집약 산업에서는 대량실업이 발생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 전환 지원방안'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지원방안은 산업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업·노동자·지역 피해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불균형 불평등 사회에서 고용충격도 차별화돼 나타난다. 산업전환과 노동전환의 매개고리는 직업교육훈련과 평생능력개발체계다.

산업전환 시대에 공정한 전환을 위한 직업교육훈련제도에 대해 고용노동 전문가들과 함께 진단한다.

삼성중공업 공동훈련센터는 조선업 산업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직무분석을 통한 특화된 기업수요 맞춤형 '스마트 ICT 선박 전장' 훈련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 삼성중공업 제공


그린·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전환의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사회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핵심 키워드는 평생 직업능력 개발체제 또는 평생 학습사회 구축이다. 노동의 대전환이 전제돼야 산업 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고 산업 전환에 따른 일과 노동의 미스매치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평생학습참여율, 30대 이후 급락 = 과연 우리는 평생학습사회를 잘 만들고 있는가? 대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역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을 밑돈다. 30대 이후 급속히 하락하기 시작해 그 격차가 연령 증대에 따라 계속 벌어진다.

30대 이전 청년들의 역량은 OECD 평균 수준보다 높은데 성인기 역량의 급속한 쇠퇴가 확인된다. 이는 결국 성인기의 학습 부족 때문이다.


OECD 34개국 평생학습참여율 국제비교(2021년 7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생학습참여율(25~64세)은 50%로 중간 수준이다. 통계가 이용 가능한 34개 국가 중 17위다. 직업관련 평생학습참여율은 20위로 더 낮아진다.

우리나라의 직업관련 평생학습참여율은 38% 수준이다. 50%가 넘는 스위스 뉴질랜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 비해 크게 낮다.

◆직업훈련 절실한 층이 참여율 더 낮아 = 평생학습 참여의 계층간 격차도 크다. 인적특성별 참여율을 보면 여성보다 남성의 참여율이 높고 연령별로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참여율이 낮아진다. 학력별로는 저학력자보다 고학력자의 참여율이 더 높다. 심지어 취업자보다 실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의 참여율이 낮다.

이런 경향은 취업자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비임금 근로자보다 임금근로자, 같은 임금근로자 내에서는 임시직보다 상용직, 시간제(파트타이머)보다 전일제 근로자의 직업능력향상교육 참여율이 더 높다.

전문성이 높은 관리자,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사무종사자의 참여율은 높은 반면, 전문성이 낮은 판매종사자 단순노무종사자 등의 참여율이 매우 낮게 나타난다.

또한 대기업에 다니거나 임금수준이 높은 취업자일수록 더 많은 교육을 받는다. 직업능력향상교육의 필요성이 더 높고 절실한 층에서 오히려 참여율이 더 낮게 나타난다.

◆평생학습은 '모든 국민의 권리' = 평생학습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비용과 시간, 마땅한 프로그램의 부재라는 3가지 문제 때문이다. 이 3가지 문제를 푸는 것이 평생학습을 활성화하고 그린·디지털 전환에 대응하는 길이다.

3가지 문제를 풀려면 '평생학습은 모든 시민의 권리'라는 대원칙의 선언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이와 관련해서 의미 있는 법령 개정이 있었다.

2021년 6월 개정된 평생교육법 제1조에 '모든 국민이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또 근로자직업능력개발법이 국민평생직업능력개발법으로 개정돼 모든 국민에게 평생 직업능력개발을 지원하는 길이 열렸다.

평생학습권이 보장되려면 적절한 비용지원이 요구된다. 비용지원을 위해 현재 '전국민 내일배움카드제'와 '평생교육 바우처'와 같은 제도가 있지만, 두 제도 모두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여기에 대한 적극적 보완이 필요하다.

◆'전국민 내일배움카드제' 보완해야 = 고용부의 '전국민 내일배움카드제'는 일정 연령 이상의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1인당 300만~500만원까지 지원한다.

그러나 계좌 유효기간이 발급일로부터 5년으로 돼있어 전생애에 걸친 대응이 어렵다. '직업관련성'에 국한돼 있고 소득요건에 따른 대상 제한도 있다. 예산 규모를 미리 정해놓고 예산을 다 쓰면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다. 전국민 대상도 아니고 전생애에 걸친 다양한 학습수요에 대응하기도 어렵다.

교육부의 '평생교육 바우처'는 9세 이상의 기초생활 수급자, 차상위계층, 기타 저소득층 중 1만명 내외를 선정해 1인당 연간 35만원 이내에서 평생교육강좌 수강료를 지원한다. 하지만 지원대상의 범위가 좁고 지원 수준도 낮다. 평생교육법에 따른 평생교육기관의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한계도 있다.

고용부 '전국민 내일배움카드제'와 교육부 '평생교육 바우처'를 통합하고 모든 국민 대상, 전생애 대상,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참여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대폭 확장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현재의 고용보험을 소득중심 고용보험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방침은 적절하지만 평생학습 활성화를 위해서는 부분 실업급여의 도입이나 자발적 실업에 대한 제한 완화 등과 같은 보완이 필요하다.

교육훈련 참여에 따른 소득감소를 일정 정도 보전해주어야 평생학습이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유급휴가훈련제도' 적극 활용해야 = 충실한 교육훈련이 가능하려면 충분한 시간 동안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2018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취업자들은 "시간이 없어 평생교육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압도적이다. 제도는 있지만 활성화되고 못하고 있는 '장기유급휴가훈련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장기유급휴가훈련제도는 재직근로자에게 유급으로 비교적 장기간의 휴가를 주고 훈련을 실시하는 사업주에게 임금과 훈련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이런 제도가 적극 활용되지 못한 것은 근로자의 권리로 인식되기보다 사용자가 제공하는 시혜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로서 장기유급휴가훈련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간 교육훈련을 떠난 재직자의 빈자리를 실업자로 대체하면 그 자체가 훌륭한 일자리 창출 기회가 된다.

특히 재직자의 빈자리를 차하위 재직자가 메우는 식으로 해서 입직하는 일자리를 비워놓고 청년층이 대체 고용되도록 하면 청년고용 문제의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

◆평생학습기관으로서 대학 역할 중요 = 실업자훈련과 재직자훈련에서 대학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민간의 영세 직업훈련기관들이 디지털 전환에 부응하는 직업훈련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때문에 대학들이 가진 인프라와 인적자원,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의 보편화와 대중화에 따라 평생교육도 대학 수준으로 상향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국에서도 평생학습 공급기관으로서 대학의 역할이 크다. 유럽의 응용과학대학이나 미국의 커뮤니티칼리지와 같은 역할을 우리 대학들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해법이기도 하다.

그린·디지털 전환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지금, 평생학습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 정비와 인프라 구축, 정책 노력의 결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가교육회의 직업교육소위 소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대통령자문 교육인적자원위원회와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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