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이후 득표율 최저

지지층 이탈, 정체성 논란

정의당이 노동·기후·성평등을 내세우며 존립 위기에서 탈출, 재기를 노렸으나 거대양당의 지지층 총결집 경쟁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노동 중심의 정체성을 지지해온 기존의 전통 당원들의 이탈을 회복하지 못한 채 6.1 지방선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마저 크게 흔들리게 됐다.
포옹하는 심상정 후보 |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가 10일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여영국 대표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3%에도 못 미치는 2.37%(80만2633표)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1997년 15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얻은 1.2% 이후 진보정당이 세운 가장 낮은 수치다. 권 후보는 16대 대선과 17대 대선에서 각각 3.9%, 3.1%를 득표했으며 심 후보는 2017년 19대 대선에 나와 6.17%로 선전하기도 했다. 심 후보는 10일 당사 개표상황실에 나와 "저조한 성적표가 솔직히 아쉽지만 민심의 평가인 만큼 겸허하게 받들겠다"면서 "이미 각오를 하고 시작한 선거였다"고 했다. 심 후보는 "지지율과 유불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 정의당의 역할에 대해 소신과 책임을 갖고 말씀 드렸다"며 "불평등과 기후위기, 정치개혁과 다원적 민주주의를 의제로 이끌어냈고 성평등을 우리 사회 보편적 가치로 분명하게 세워냈다"고 자평했다. 그러고는 "다시 뛰겠다"고 했다.

정의당은 2019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더불어민주당과 손잡았고 이 과정에서 조국사태에 눈을 감았다는 비판을 지지층들로부터 받았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거대양당의 위성비례정당 설립으로 6석을 얻는 데 그치자 존재 이유와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당 안팎에서 쏟아졌다. 또 세대교체로 들어선 신임 당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고 '페미니즘 정당'이라는 평가가 덧씌워지면서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이라는 기존의 색깔이 퇴색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특히 재기의 발판으로 삼을 이번 대선에서 세대교체 없이 심 후보가 전면에 다시 나서는 등 거대 야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으며 거대양당이 백화점식 공약을 쏟아내면서 진보정당만의 어젠다 선점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정의당은 재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힘든 구간으로 접어들게 될 전망이다. 유일한 희망인 '지방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압박하겠지만 거대양당이 대선국면에서의 공약을 속도감 있게 이행할 지도 불투명하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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