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환 서강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도자 리콴유에 대해 굳이 국민들이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면, 이룬 공적과 남긴 영향력 측면에서 그를 능가하는 정치지도자는 근현대에는 없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싱가포르가 조그만 도시국가라 누구든 그만큼 이룰 수 있었다거나, 다른 큰 나라들이 교훈으로 삼을 수 없다거나, 재임 당시 휘두른 독재의 칼날은 그의 치적을 덮고도 남는다는 비판은 다분히 일면적이다.

빈틈없는 언론통제와 철저한 반대세력 탄압으로 압축되는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자신도 인정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오이지만 존재하지 않던 나라가 독립해 국가가 되고, 발전과 번영에 이르게 되는 긴 과정을 모두 이끈 리콴유는 싱가포르 현대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또 정치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지도자들 중 한사람이 리콴유다. 개인적 성향, 통치 스타일, 정책적 성과 등의 측면에서 리콴유는 리더십의 한 유형을 구성하고 그 표준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 사회, 불행 느끼는 국민 늘어

호치민은 북베트남을 프랑스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시키고 희생을 감수하며 미국과의 전쟁을 불사했지만 정작 최종 승리와 조국통일은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수카르노는 수백의 종족들이 힘을 합해 인도네시아라는 새로운 국가와 국민을 만드는 과정에서 눈부신 역할을 했지만, 허황된 이념과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인도네시아를 빈곤과 혼란의 늪에 빠트리고 말았다.

2차세계대전 후 제3세계에서 독립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국가건설과 경제발전까지 동시에 성공한 지도자는 리콴유밖에 없다. 리콴유의 치적은 독립을 넘어 새로운 국민과 국가를 '창출'해냈다는 점에서는 이웃 두 대국의 지도자를 능가한다.

리콴유의 이념 철학 정책 성과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젊을 때 노동자를 대변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지만 좌파 정치세력과 결별했고, '아시아적 가치'를 주창했지만 유교에 비판적이었으며, 법과 질서를 위반하는 자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철저했지만 채찍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자유경쟁과 시장경제를 신봉했지만 국영기업과 국가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영했으며, 빈부 소득 지식 격차가 엄청나지만 국민들이 의식주 걱정이 없이 살아가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해왔으나 과반수 지지가 무너지지도 정권이 교체되지도 않는 그런 나라를 만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리콴유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일견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비록 윤리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매우 논리적이며 실증적이라는 사실이다. 리콴유와 싱가포르를 설명하는 다양한 분석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리콴유가 만들고자 했던 사회는 철저히 그 사람의 실력과 성과를 잣대로 평가하는 능력주의체제(메리토크라시)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리콴유 자신과 가족들이 최고의 엘리트였다. 자신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국 1, 2등을 다툴 정도로 수재에다 케임브리지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해 변호사가 된 엘리트였고, 똑같은 학력의 부인 콰걱추는 그와 수석을 다투는 경쟁자였다.

그래서인지 각료 국회의원 국영기업 국책기관의 장을 지명할 때도 학력과 실력을 따졌다. 결국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더 교육을 중시하고 학력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고육이 붕괴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총리와 각료들이 받는 봉급 수준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리콴유 재직 당시 부인 아들 딸들이 정부와 국가기관에서 요직을 맡으면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리콴유는 모두 각자의 능력 덕분이지 결코 특혜나 정실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이렇게 싱가포르를 메리토크라시로 설명하는 것은 권력상층부에는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정치나 정부가 아닌 다른 영역, 비엘리트 계층, 정치적 반대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리콴유가 높은 윤리의식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완벽한 지도자라는 좀 듣기 민망한 분석도 있다. 이는 유교의 국가관이나 군주관, 플라톤이나 헤겔 등 서양철학자들이 이야기한 철인왕이나 절대선의 구현체로서 국가의 현실적 모습이 싱가포르라는 것인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이 들으면 크게 분개할 소리다.

리콴유가 특히 부정부패에 대해 가혹할 만큼 엄격했고, '깨끗한 정부'라는 평가를 가장 좋아한 것은 유교국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어린 학생의 실력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실시하는 싱가포르의 교육제도는 능력에 맞는 직업을 부여하는 플라톤의 '공화국'(리퍼블릭)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계급사회'에 대해 갈수록 많은 싱가포르인들이 불행을 느낀다.

법가적 통치 이면엔 다양한 인센티브

리콴유와 싱가포르에 대해 조금 부정적인 평가 쪽으로 옮겨가 보자. 우선 '법가'(法家)적 사상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 바로 싱가포르라는 시각이 있다. 싱가포르를 끌고 온 가장 강력한 통치수단은 법이었고 이 법은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좋은 나라다"(Singapore is a fine country)라고 써 놓은 티셔츠 뒷면에 범죄행위 같지 않은 여러 경범죄에 대한 무거운 벌금(fine) 액수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싱가포르정부가 얼마나 법과 규제에 의존해 국민을 통제하는지 알 수 있다. 마약거래범에 대해서는 관용 없는 사형으로 다스리고, 아직도 파렴치범은 공포스러운 태형을 부과하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그러나 리콴유는 법에만 의존해 국가를 경영할 정도로 단순한 지도자는 아니었다.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테일에 강한 싱가포르정부가 제공한 다양한 인센티브였다.

정치학자들이 리콴유를 보는 시각이 가장 비판적이다. 싱가포르가 권위주의 국가인 것은 명백한데 그 정도에 따라 선한 독재, 반쪽 민주주의, 마키아벨리적 독재, 전체주의적 독재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선한 독재론이란 정치체제는 독재에 가깝지만 그 독재의 의도가 국가발전과 국민복리의 증진이며, 그러한 의도를 실현한 지도자가 바로 리콴유라는 것이다. 반쪽 민주주의론은 선거와 의회제도를 인정하고 나름대로 중시하는 체제라는 주장이다. 마키아벨리적 독재론과 전체주의적 독재론은 리콴유와 집권정당 인민행동당이 써 온 전략이 실은 조작 선동 기만 회유 강압 폭력 국가테러 등 반민주적인 것들이고 전자는 좀 더 교묘하고 후자는 좀 더 노골적인 것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다.

냉철한 현실주의, 철저한 실용주의 바탕

리콴유의 리더십은 그 어느 한가지로 설명되지 않는다. 모든 수단과 전략을 적재적소에 사용했다. 이들 간의 모순과 비판을 하나로 꿰어 준 것은 리콴유가 시종일관 유지한 냉철한 현실주의와 철저한 실용주의였다. 독립협상 중에는 영국의 진보주의자 및 중국계 좌파 노조와 연대했으며, 독립 직후 야당 시절에는 주도권 장악을 위해 정부와 협력해 동지들을 버렸고, 집권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한 이후에는 경제발전과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조를 탄압했다.

영국에서 배운 자유평등 정신과 민주주의로 독립을 쟁취하고, 동서냉전의 현실과 시장경제의 필요성에서 친미와 반공을 표방하고 국방을 중시했으며, 잔인한 자본주의 세계경제로부터 소규모 자국경제를 방어하기 위해 국가가 시장에 깊숙이 개입하는 정책을 썼다.

중국이 개혁개방한 이후에는 중국이 가장 신뢰하는 경제 파트너가 되었다. 현실주의를 신봉하는 실용주의 지도자 리콴유는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전쟁 선전선동을 담당한 일본군 보도부(호도부)에 취직해, 연합국 라디오에서 송출되는 모스부호를 해독하는 일을 담당했다. 지금까지 이것을 문제삼는 싱가포르인은 아무도 없었다.

신윤환 서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