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용 인천대 교수, 동북아국제통상학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그래도 대충 하나로는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옛 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공으로 해석하든, 미국과 러시아가 각자 광범위한 동맹(혹은 연대)을 통해 벌이는 제국주의 간 충돌로 해석하든 '제국'의 형성과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대중들은 보다 직설적으로 러시아의 제국주의와 주권을 지키려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것이라 말한다.

만일 우크라이나사태가 일종의 '지연된 소련 해체'로 해석된다면,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제국의 평화적 해체'(1991) 이후 진행된 유라시아 지역주의에 대한 다층적인 분석을 통해 진실에 다가서야 한다.

푸틴 대통령은 평소 '소련 붕괴는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항하기 위해 '유라시아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구소련 공간의 재통합 전략을 추진했다. 이런 맥락에서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유라시아 공간의 해체와 재통합 과정에서 발생한 분열적 혼란을 의미한다.

경제공동체 형성은 자연스러운 과정

만일 유라시아 공간의 해체와 재통합이 문제의 핵심이라면 2015년 러시아 주도로 출범한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의 성격과 향후 진로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EAEU는 통상적인 지역협력체인가, 아니면 구소련 부활을 기획한 러시아 제국주의·팽창주의의 제도적 기반인가?

1991년 12월 소연방 해체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러시아의 푸틴,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벨라루스의 루카센코 대통령은 EAEU 설립에 서명했고, 2015년 1월 1일 공식 출범했다. 이후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이 가입해 회원국은 5개국으로 늘어났고, 몰도바 우즈베키스탄 쿠바가 옵서버 국가가 되었다.

사실 EAEU는 구소련 해체 이후 중단없이 지속된 경제통합 과정의 산물이다. 독립국가연합(CIS)을 토대로 유라시아경제공동체, 유라시아 관세동맹, 유라시아 공동경제공간 등 일련의 통합 과정이 이어졌다. 결국 EAEU의 출범은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력의 자유로운 역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지역경제통합으로의 실질적인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EU)과는 비교할 수 없는 EAEU만의 특징들도 있다. 단일한 주체(구소련)가 해체된 뒤 다시 통합으로 나아가는 재건과정이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소련'이라는 경제 공간이 남긴 물질적·정신적 유산, 그리고 그것의 해체가 가져온 사회적·경제적 파장과 이에 대한 인식, 지역통합을 촉진하는 대내외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소련의 해체가 러시아를 포함한 구소련 공화국들에게 어떤 사회경제적 혼란과 재난을 초래했는가를 기억한다면 재통합을 향한 반전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에프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본격적으로 EAEU를 추진한 것이 2011년부터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 주도의 단극질서를 끝내고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당위론적 주장도 유라시아 역내 단일경제공간 구축을 촉진하는 배경이 되었다.

따라서 EAEU의 출범을 가리켜 구소련 공화국들을 '제국'의 일원으로 다시 복속시키려는 러시아의 불온한 '정치적 기획'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악의적인 왜곡이다. '소련 제국의 부활'로 몰아가는 것은 전통적인 '러시아 혐오증'(Russophobia)에 기댄 서구중심적인 사고다. 실제로는 나름의 경제적 합리성과 지역화라는 시대적 조류, 그리고 EU·중국의 세력 팽창에 맞서 유라시아 경제공간에 대한 우월적 지배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지전략적 목표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연계된 재통합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

잠재력 크지만 구조적 제약도 많아

향후 러시아가 EAEU를 자신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거대한 경제통합체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잠재력 측면에서는 '강력한 토대'를 갖추고 있다. 전세계 면적의 약 14%에 해당되는 2000㎢를 포괄하고, 인구는 1억8000만명을 넘는다. 2020년 12월 승인된 'EAEU 2025 발전전략 방향'에 따르면 EAEU의 국내총생산 규모를 2030년까지 세계의 4.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최근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분쟁,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분쟁 등을 포함한 접경국 간 갈등이 여전히 지역통합을 방해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낮은 인구밀도, 낙후된 사회 인프라, 원료에너지 산업과 농업에 편중된 산업구조와 전반적으로 취약한 제조업 기반 등도 중대한 걸림돌이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전쟁 여파로 역내 국가들이 상당 기간 경제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EAEU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구조적인 문제들도 EAEU의 확장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총생산 인구 영토 등에서 러시아 한 나라가 다른 회원국 모두를 합한 것보다도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대칭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여타 회원국들은 EAEU가 러시아의 독단과 전횡의 공간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한다.

경제통합의 집중도 측면에서도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2020년 기준 유라시아경제연합에서 러시아의 국내총생산은 전체의 85.6%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총수출에서 러시아의 비중은 62%, 총수입에서는 35.4%에 불과하다.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굳이 EAEU에 참여할 경제적 유인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역 집중도 측면에서 보더라도 러시아는 과거에 비해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 유라시아경제연합 역내 교역 비중은 대략 14% 수준으로 역외 교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 역내 교역 비중은 아직 10%에도 못 미친다. 현재 EAEU 회원국들의 주요 교역 파트너는 EU와 중국이고, 이들의 비중은 각각 36.8%, 20.2%다.

EAEU 각국별로 역내 상호교역에서 수출입 국가들의 비중을 살펴보면 러시아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것은 대체로 유라시아 공간에서 지리적으로 근접한 국가들과 교역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중심'으로서 러시아의 역할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소련 범위를 넘는 확장 주목해야

결론적으로 경제통합의 조건과 집중도 측면에서 EAEU가 유라시아 공간의 지역통합을 강화해야 할 경제적 동기나 유인이 큰 것은 아니었다. 또 '순수한' 경제적 측면의 요소들로 경제통합을 견인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지역의 글로벌 지역화가 공간적으로 구소련 국가들의 범위를 넘어 확장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EAEU 차원에서 베트남 싱가포르 세르비아 타지키스탄 이집트 이란과 FTA를 체결했고, 인도 중국 등과도 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구소련'의 공간에 갇히지 않고, 글로벌 개방성과 세계시장 통합 추세를 나름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 러시아가 유라시아 지역통합을 위해 어떤 전략을 펼쳐나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사태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상당 기간 우크라이나의 EAEU 참여는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고, 우즈베키스탄의 가입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게다가 서방으로부터 전면적인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기존의 유라시아 지역통합 전략을 보완, 또는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