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놓친 경찰 배치 … 상인단체 사전통제 요청 무시 의혹

"발 디딜 틈도 없더라고요. 보도에 표시된 보행방향을 무시하고 인파들이 몰려다니는데도 통제하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30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 골목에서 만난 김 모씨는 3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참사가 발생한 전날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이러다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데 어느 누구도 안전관리를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하면서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이 뻔한데도 경찰의 안전관리는 소홀했고 대규모 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 만에 '노마스크'로 맞이하게 된 핼러윈 데이에 대규모 인파가 이태원에 운집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경찰도 다르지 않았다. 관할서인 용산경찰서는 지난 27일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핼러윈으로 클럽 등 영업제한이 해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축제열기가 고조되고 있고 온라인상 핼러윈과 이태원을 키워드로 한 검색량이 폭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 바 있다.

실제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한 29일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이용객 수는 총 13만131명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핼러윈 때 3만459명보다 4배 이상 많은 수치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9만6845명에 비해서도 30%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경찰은 안전사고에 대한 고려 없이 마약과 성범죄 단속에만 중점을 뒀다.

용산서는 보도자료에서 "일일 10만명 가까운 인원이 이태원관광특구 중심으로 제한적인 공간에 모이다보니 불법촬영·강제추행·절도 등과 같은 범죄가 빈발하고 있고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민불편도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핼러윈 주말 3일간 112·형사·여성청소년·교통 등 관련 기능에 추가로 경찰기동대를 지원받아 총 200여명 이상 이태원 현장에 배치하겠다"고 했었다.

또 "마약범죄에 대한 실시간 단속·감시를 강화하고 관련 112신고 접수시 현장에서 출동해 신속한 증거확보와 피의자 검거 등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경찰이 밝힌 이날 현장배치 경찰병력은 137명. 지난해 85명, 2020년 38명, 2019년 39명에 비해 대폭 늘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지만 당초 용산서가 제시했던 200명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이날 광화문과 삼각지 등에서 개최된 집회에 4000명 이상의 경찰력이 동원된 것과도 대비된다. 이마저도 대부분 마약범죄 단속과 성추행 등 각종 사건·사고를 막기 위한 인력으로 안전사고에 대비한 경찰병력 배치는 없었다. 이번 참사 책임에서 경찰이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재난안전법상 안전관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고, 집시법상 집회에 해당하거나 지자체 등에서 요청이 있을 때에만 경찰을 배치한다는 게 경찰측 설명이다.

하지만 사고발생 3일 전인 26일 경찰과 용산구, 지역 상인단체, 지하철 이태원역장 등이 미리 모여 회의를 갖고도 별도의 안전대책을 추진하지 않아 안일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상인단체는 경찰과 지자체에 사전 통제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5~16일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이태원지구촌축제 당시와 비교해 경찰의 적극적인 안전관리를 아쉬워하는 소리도 나온다. 이 행사는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가 주최하고 서울시·용산구가 후원했다. 당시 경찰은 주최측 요청으로 이태원역 메인도로를 통제해 다수의 인파가 몰렸음에도 혼잡은 없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이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이태원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우려할 정도의 인파가 아니었고, 경찰을 배치했어도 어쩔 수 없었다면 결국 희생당한 젊은이들만 잘못했다는 얘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곳에서만 20년 넘게 장사를 해왔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처음 봤다"며 "행안부 장관이 현장을 제대로 파악은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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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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