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경찰·소방 대응 원인이었는지 의문"

현장안전 못지킨 지자체·경찰, 매뉴얼 타령만

"정부 책무인데 매뉴얼 없다고 조치 못하나"

이태원 압사 참사로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지만 책임을 모면하려는 태도로 일관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이나 소방의 대응이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이태원 사고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한 뒤 전날 자신의 발언 의미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면서다.

이 장관은 지난달 30일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어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정부가 참사의 책임을 집회 참가자 등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이 장관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더 나아가 "과연 경찰의 병력 부족으로 발생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집회나 모임에 시정해야 할 것이 있는지를 더 깊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에게까지 책임을 넘기는 듯한 발언으로 해석돼 논란을 더 키웠다.

대통령실이 이 장관을 두둔하고 나선 것도 논란거리다. 대통령실은 "(이 장관의 발언은) 현재 경찰에 부여된 권한과 제도로는 이태원 사고처럼 주최자가 없는 집회 시위는 예방이나 선제 대응이 어렵다는 발언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현장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용산구와 경찰도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규정이 없다"며 매뉴얼을 핑계 삼아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사태 책임을 묻는 언론 질문에 구청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아 책임을 어디까지 져야 하는지 명확치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주최측이 없는 다중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의 관련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위법에서는 국민 안전을 정부와 지자체의 책무로 명시하고 있다. 재난안전법 4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돼 있고, 경찰법에서는 경찰의 임무로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보호,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규정하고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더 구체적이다. 제5조는 '경찰관은 극도의 혼잡, 그밖에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경고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심지어 매우 긴급한 경우에는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사람을 억류하거나 피난시킬 수도 있다.

정부와 경찰 지자체가 매뉴얼 부재를 내세워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면피하려는 것으로만 보이는 이유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공 안녕과 질서 유지는 경찰의 기본적인 사명"이라며 "매뉴얼이 없다고 조치를 할 수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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