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자율 행사 증가 추세

'주최없는 행사' 관리 오히려 더 중요

15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최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주최없는 행사라는 이유로 책임 회피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오히려 안전대책을 더 챙겼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 소방안전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찰 경비에서 혼잡경비 개념을 도입,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존 경찰의 경비 대책은 집회, 시위 대응이 중심을 이뤘다. 테러 등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대규모 집회, 시위를 막거나 현장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 경찰의 경비업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은 시민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꺼려했고 대규모 집회를 원천 차단했다.

2000년대 이후엔 다른 양상을 띄었다. 1980~1990년대의 군중밀집이 주로 반정부 시위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면 2000년대 이후 최대의 밀집은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이다. 이전 밀집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군중밀집이었다. 물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 시위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명박정부 초기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2016년 박근혜정부 국정농단을 비판하는 전국민적 촛불시위 등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경험했던 대규모 군중밀집 행사는 다른 나라들이 놀랄 정도로 질서가 지켜졌다. 특히 2016년 촛불시위는 행사 중 참석자 간 충돌이나 행사 뒤 쓰레기 더미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시민의식을 드러냈다.

윤명오 시립대 교수는 "현재 대규모 행사를 대하는 경찰과 시민들 의식 모두 그간 보여온 높은 수준의 집회·시위 문화 때문에 '별 일 없겠지'가 주를 이룬다"며 "주최없는 행사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안이한 대응은 이같은 '방심'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선 경찰과 지자체 안전대책이 기존 집회·시위 관리에서 혼잡 경비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2001년 7월 일본 효코현 아카시시에서 열린 불꽃놀이 행사에서 11명이 사망하고 247명이 부상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고는 해안가에서 열리는 불꽃놀이 행사에 온 수많은 관중이 좁은 인도교를 지나가다 도미노처럼 쓰러져 발생한 사고다. 11명이 전신 압박에 의한 호흡 곤란 증후군(압사)에 의해 사망하고 24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특히 가족 단위 관람객 피해가 컸다.

사고 이후 일본은 인파가 몰리는 현장에서의 현장 통제를 강화했다. 2005년 법령을 개정해 시설·교통 경비와 별도로 군중 사고 예방을 위한 경비 이른바 '혼잡경비'를 실시할 것을 규정했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도 핼러윈 데이 즈음이면 이태원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인파가 모인다. 일본 경찰은 거리 곳곳에 확성기를 장착한 경찰 지휘차, 일명 'DJ 폴리스'를 배치해 계속해서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핼러윈을 비롯 크리스마스, 해맞이 행사 등이 열리는 장소에는 압사 사고를 막기 위해 경찰 수백, 수천명이 배치돼 현장을 통제한다.

미국은 대규모 행사계획 수립 시 행사장 설계에서부터 기존에 집행된 행사내역 검토, 행사에 부정적·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파악, 그리고 행사장 주변과 내부배치 등까지 경비 인력이 투입돼 행사 계획 수립에 관여한다.

김동준 교수(세한대 소방행정학과)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 그동안 눌렸던 모임과 군중밀집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주최없는 행사일수록 사고가 발생하고 확대될 위험이 큰 만큼 지자체와 경찰 역할에 혼잡경비를 포함하고 안전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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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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