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오원춘 사건서 인정

용산구 불법증축 방치 논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안일한 대처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국가배상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112신고 부실대응으로 인해 숨진 '오원춘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배상소송에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는 물론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인정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경찰관직무집행법상 피해자를 구조하지 못한 책임이 경찰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용산구가 사고현장 불법 건축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영조물(도로) 하자에 따른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찰과 용산구 등의 책임론에 무게가 실리면서 피해자들의 직접 소송 외에 보험사들이 경찰 용산구 등에 구상권 청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지원단을 검토하고 나섰다. 법률단체의 법률지원단이 구성되면 과거 대형재난 및 참사 사고 경험을 토대로, 보험금 청구를 비롯해 각종 소송을 지원하게 된다.

◆국가배상 쟁점은 =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이태원 참사 전 11건의 112 신고가 접수됐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112 신고는 모든 기록이 남기 때문에 각종 소송에서 중요 증거로 쓰인다. 법조계에서는 10년전 오원춘 사건과 맥락이 같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2012년 4월 불법체류자인 오원춘은 A씨를 납치한 뒤 살해했고, 시신을 훼손했다. 납치된 여성은 경찰에 112 신고를 했으나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구조하지 못했다. 애초 경찰은 피해 여성과 112 통화 시간은 1분 20초에 불과했다고 밝혔지만 언론 취재 결과 총 7분 36초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초동 대처를 실패해 놓고선 이를 축소발표까지 했다. 사건 발생 9일 만에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은 사퇴했다.

A씨 유족들은 112 신고를 했는데도 초동 수사가 미흡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6000만원의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는 "경찰이 상당한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국가 책임을 30%로 제한한 뒤 유족에게 998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민사8부는 "경찰이 일찍 수색에 성공했더라도 피해자가 생존 상태에서 구출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며 "국가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1심 인용액을 2130만원으로 대폭 줄였다. '구조 기회 박탈'에 대한 위자료만 인정하고 A씨 사망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위자료 등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은 국가배상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2016년 7월 대법원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오원춘에게 납치 살해된 A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경찰관이 신고내용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받았다면 A씨를 생존 상태로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관의 직무위반행위와 A씨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파기환송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13부는 정부가 A씨 유족에도 추가로 78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관 출신 한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한다면 피해 인원이 많고, 세세한 차이가 있어 각각의 쟁점이 다를 것"이라고 전제한 뒤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국가의 책임은 절대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자체, 영조물 관리 책임 = 이와 함께 용산구도 사고가 발생한 지점의 불법건축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내리막길에 무허가 건축물이 있으며, 내리막길 옆 해밀톤호텔의 일부 공간도 불법 증축된 것으로 파악됐다.

도로는 국가 또는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관리하는 대표적인 영조물(공공시설)이다. 도로나 안전시설 등의 관리소홀 및 하자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 국가배상법에 따라 담당 기관이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2018년 취객이 청주시가 소유·관리하는 토지에 들어갔다가 실족해 숨진 사건이 있었다. 유족은 지자체가 영조물에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보고 국가배상청구를 했고, 법원은 일부 인용한 바 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확정됐다.

다만 법해석에 있어서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변호사는 "우선 영조물 관련 소송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면서 "지자체가 불법건축물에 대해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면 그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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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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