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매뉴얼 대상에 자발적축제 제외

보고라인 붕괴, 경찰 늦장 대응도 도마에

'이태원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정부·지자체의 총체적 안전 불감증이 지목되는 가운데 국민 156명의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는 세번의 기회를 스스로 날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참사 발생 후 위기대응 시스템까지 제시간에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국가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3일 정부와 지자체 등에 따르면 대형 압사사고 가능성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행정안전부는 2005년 경북 상주시민운동장 압사사고를 계기로 논의를 거쳐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개정했다. 매뉴얼은 지자체와 민간이 동시간에 1000명 이상이 모이는 지역축제를 개최할 때에는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했다.

문제는 그 대상을 주최자가 있는 행사로 한정했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핼러윈데이가 '행사주체가 없는 자연발생적 민간행사'라는 점을 들어 직접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안전기본법 제4조 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고, 재난과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행정편의가 아니라 국민안전 중심으로 매뉴얼을 만들었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문현철 교수(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는 "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는 위험이나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무조항이 있다"며 "매뉴얼이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압사 재난' 경고 사실상 묵살 = 압사 재난에 대한 경고는 또 있었다. 2015년 경찰청은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단에 발주한 연구용역 '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보고서에는 다중 운집 행사를 유형별로 정리할 필요성과 경찰,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용역 보고서는 사실상 사장됐고, 경고는 2022년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자치단체도 스스로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은 2016년 '신종 대형 도시재난 전망과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압사 사고를 '과거에는 발생한 적이 별로 없으나 장래에 새로운 위험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재난'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압사 사고는 공연·체육·대형쇼핑시설·지하철역·행사장·집회장 등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밀집한 장소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도로환경 정비, 주정차 관리, 비상차선 확보 등 도로환경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연구원은 4년 뒤인 2020년에도 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위험성을 재차 경고했다.

◆핼러윈 축제 직전 '위험 신호' 인지 못해 = 전문가들은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경찰과 지자체 안팎에서 제기된 위험신호를 두번째 골든타임으로 꼽는다. 하지만 경찰과 지자체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참사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이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경찰 내부에 공유했다. 또 같은 날 용산경찰서 정보과도 유사한 내용이 담긴 '이태원 할로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 보고서를 서울청에 보냈다. 하지만 추가 안전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일선에서는 핼러윈 축제에 대비하면서 기동대 지원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용산구는 지난달 26일 핼로윈을 앞두고 경찰, 이태원역장, 상인회와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자원순환과 직원만 참석해 쓰레기 문제 등을 상인회에 안내하는 데 그쳤다. 이튿날에도 용산구는 '할로윈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특별 방역, 안전사고 예방, 거리 청결 확보가 주제였다.

반면 용산구는 참사 2주 전인 지난달 15∼16일 이태원관광특구 주최, 서울시와 용산구 후원으로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지구촌축제' 당시에는 서울시와 사전에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축제 방문자의 안전관리 대책 등을 논의했다. 특히, 경찰과도 협의해 도로 교통도 통제했다. 축제 기간 이태원에 약 100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됐지만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

마지막 골든타임은 참사 당일 시민들이 경찰에 보낸 위험 신호였다. 하지만 경찰이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서 참사를 막을 마지막 기회가 날아갔다.

첫 신고는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에 이뤄졌다.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걸려온 신고 전화로 4시간 후 발생할 대형 참사의 전조였던 셈이다. 특히, 참사 2시간여 전부터는 넘어져 다친 사람이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참사 두시간 지나서야 교통통제 시작 = 뿐만 아니라 참사 발생 후 경찰의 늦장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발생 후 1시간 59분 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발생 1시간 21분 뒤 첫 보고를 받았다.

보고 지연에서 비롯된 경찰의 지휘공백은 뒤늦은 대응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참사 당일 오후 11시가 돼서야 녹사평역에서 한강진역에 이르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일대를 통제했다. 교통순찰대를 비상소집해 이태원로 일대에 배치한 시간은 이튿날 0시 11분, 사상자 병원 이송을 위한 이동로 교통관리는 오전 1시 11분 시작됐다.

이에 따라 부실한 현장 대응은 물론, 무너진 경찰 보고·지휘체계에 대한 감찰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휘부 책임론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윤 청장 역시 책임을 져야 할 정황이 드러난 만큼, 이번 감찰을 전담하는 경찰청 내 특별감찰팀이 소신껏 조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을 내놓는다. 특별수사팀에 독립적 조사 권한을 줬다고 해도 경찰청 산하 조직이고 특별감찰팀장의 직급도 총경이라 공정한 조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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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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