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예방' 책무 명시돼 있지만 안전대책 소홀

지난 2014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강화되면서 지방자치단체들도 일제히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조례'를 정비했다.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 등을 보호하기 위한 재난 및 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막자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에서 재난안전관리 기본조례는 유명무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특별시와 용산구의 재난안전관리 기본조례에서는 각종 사고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지자체가 최대한 노력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이태원 압사 참사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서울시의 재난안전관리 기본조례 제 3조에 따르면 '시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재난 발생 시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난 및 안전관리 시책을 마련해야 하며 재난 발생 후에는 주민생활 안정과 재난 복구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기관 등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해당 기관에 협력을 요청하고 관계기관 등으로부터 협력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이에 응해야 한다.' 용산구의 재난안전관리 기본조례 3조에서도 구의 책무로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례에서 규정한 지자체의 책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처음 맞는 핼러윈에 10만명 이상 인파가 이태원에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서울시는 이렇다 할 예방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참사 당시 유럽 출장 중이었다.

안전에 소홀하긴 용산구도 마찬가지였다. 용산구는 과거 핼러윈을 앞두고 용산경찰서장, 이태원역장, 이태원119안전센터장,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장 등이 참석하는 민관합동회의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열지 않았다. 대신 용산경찰서의 관련 과장들과 상인연합회 관계자, 이태원역장 등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었다. 용산구에서는 자원순환과 직원들만 참석해 쓰레기 문제 등을 안내했다고 한다.

용산구는 참사 이틀 전인 27일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특별한 안전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회의는 부구청장 주재로 진행됐다. 용산구청이 현장에 배치한 인원도 3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2주전인 15~16일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주최로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지구촌축제'의 경우 서울시와 구청이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안전관리 대책 등을 논의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 행사에는 용산구 직원만 1078명이 투입됐다.

특히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가 발생하기 직전 두 차례나 현장 근처를 방문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참사가 발생하자 용산구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매뉴얼이 없다는 점을 들어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 행정안전부의 지역축제 안전관리 매뉴얼에서는 주최가 없는 행사에 대한 규정이 없다. 하지만 지자체 기본조례에서 안전관리 책임을 명시하고 있는 만큼 지자체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동구청장을 지냈던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난안전법의 취지도 그렇고 지자체 조례에서도 주최자 유무와 관계 없이 사고 예방과 안전관리에 대한 지자체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이태원 참사는 지자체의 책무를 방기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조례 내용은 선언적이어서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신속하게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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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이제형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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