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서울시, 사고 3일 뒤 첫 사과

지옥철·불법건축물 뒤늦은 일제점검

이태원 참사가 국가재난안전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낳은 참극이란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지자체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와 재난안전당국은 '추궁 보다 추모의 시간'이라며 사후대책과 복구만 입에 올리고 있지만 경찰과 함께 지자체 책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앞에서 오인환 진보당 서울시당위원장이'사망자가 아니라 희생자입니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3일 참사 당일 112 신고접수 내역이 공개되면서 경찰은 뭇매를 맞았다. 사고 4시간 전부터 압사 우려 신고가 접수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하지만 재난안전전문가들은 경찰과 함께 지자체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재난안전기본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기본적 의무라고 명시하고 있다.

재난대책은 예방-대비-대응-복구 4단계로 이뤄진다. 경찰과 소방이 대응 단계를 책임진다면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지자체장은 예방·대비 단계의 1차 책임자다. 이 상황에서 대통령은 연일 분향소만 찾고 있고 서울시와 용산구는 사고가 일어난지 사흘이 지나서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예방과 대비에 대한 책임은 온데간데 없고 십자포화를 맞고 있는 경찰 뒤에서 사후약방문격 대책만 내놓고 있는 형국이다.

경찰과 함께 지자체 책임론이 부상하는 것은 법이 정한 책무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재난안전기본법이 명시한 재난 예방·대비 1차 책임자다.

재난안전 전문가들에 따르면 재난대책은 예방-대비-대응-복구의 4단계로 이뤄져 있다. 참사 초기 정부는 "지금은 사고수습과 유가족 지원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복구'만을 강조했다. 근조 없는 근조 리본을 강요했고 참사가 아닌 '사고',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표기하는 등 사태 축소에 열을 올렸다.

참사 나흘째 경찰의 112 신고접수 내역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그때까지 버티고 있던 경찰청장, 행안부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이 줄줄이 사과 입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어디에서도 '재난의 예방과 대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은 없다.

애도 기간이 끝나고 추궁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용산구는 사전 대비는 물론 당일 구청장 행적, 대응체계 미작동 등 재난안전관리 전 분야에서 비난을 사고 있다. 서울시는 8년전 이미 압사 사고 위험성을 우려하고 구체적인 메뉴얼까지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난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법까지 상세히 담겨 있지만 이번 이태원 사고엔 적용되지 않았다. 주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기획위원은 "이 정도 큰 규모 행사를 하는데 모니터링 하지 않고 당시 당직 시스템이 상황실 체계로 전환하지 않은 것 등 시가 갖고 있는 재난대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용산구도 문제지만 경찰과 용산구 등 관계 기관을 조율할 수 있는 광역지자체인 서울시가 재난대응 자원 동원, 능동적 예방대책 수립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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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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