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발생 85분 지나 기동대 도착 … 사고 우려 내부 문건 삭제 의혹

지휘부 공백 상태에서 경찰 기동대는 사고 발생 1시간 25분 뒤에야 현장에 도착하는 등 경찰의 부실한 현장 대응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또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용산경찰서 내부 보고서가 참사 발생 후 삭제된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 책임론이 제기되자 의도적으로 보고서를 없애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참사 당일 경찰 112기동대는 밤 11시 4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투입된 기동대 5개 부대 가운데 가장 먼저 도착했지만 참사가 발생한지 85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77·67·32·51기동대가 밤 11시 50분부터 이튿날 새벽 1시 33분까지 차례로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 부대는 용산경찰서와 서울경찰청 지시로 출동했다. 안전 관리와 질서 유지를 담당하는 경찰 기동대 출동이 늦어진 것은 지휘부의 늑장 대응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은 밤 11시 5분에야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이 전 서장의 전화 보고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참사 사실을 인지한 시간은 밤 11시 36분이다. 이들은 현장 도착, 참사 발생 이후에야 기동대 투입을 지시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당일 서울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했던 류미진 총경이 참사 발생 1시간 24분 지나 상황을 인지한 구체적 경위 조사도 진행 중이다. 류 총경은 자리를 비웠다가 당일 오후 11시 39분 상황실로 복귀했다. 사고 연락을 받고 10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5층 상황실로 내려온 게 아니라 복귀 뒤에야 상황 보고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서울경찰청의 다른 주요 간부들도 참사 발생 후 일러야 3시간 뒤 청사로 출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참사 당일 마약 단속을 위해 현장에 배치된 형사 인력들은 밤 10시 44분에야 상황을 인지하고 조치에 나섰다.

◆압수수색 과정서 정황 확인 = 또한 특수본은 핼러윈 인파 사고 우려 문건을 서울경찰청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참사 발생 후 삭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용산서 공공안녕정보외사과(정보과) 과장 등을 직권남용 및 증거인멸 혐의로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삭제된 보고서는 지난달 초와 26일 용산서 정보과 소속 정보관이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핼러윈 기간 대규모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고서는 통상 직속상관인 정보계장과 정보과장 검토를 거친 뒤 경찰 내부망에 등록된다. 특수본은 이들이 일선 정보관들의 안전사고 관련 보고를 묵살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보고서 삭제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삭제 과정에서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정보관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수본은 지난 2일 용산서 정보과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용산서 측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보고서를 삭제했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서 정보과장은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 등에 관한 규정' 등을 근거로 해당 자료에 대한 법정 보관 기한이 지나 정보관들에게 삭제를 요청했다는 입장이다.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정보보고서는 수집·작성한 정보가 그 목적이 달성돼 불필요하게 됐을 때 지체 없이 그 정보를 폐기하데 돼 있다.

특수본은 지난 2일 핼러윈 참사 대응과 관련해 용산서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증거인멸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했다.

특수본 관계자는 "용산서 정보과장과 같은 과 계장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특수본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피혐의자들을 불러 구체적인 삭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특수본 13명 추가 투입 = 한편 경찰은 특수본에 박찬우 경찰청 범죄정보과장(총경) 등 13명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수사인력을 보강했다.

지난 5일 경찰청은 박 총경과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1개 팀 6명 등 수사인력을 합류시키고 김동욱 서울 노원경찰서장(총경)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특수본은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인 점을 고려해 수사지원 기능을 강화하고 수사의 신속성과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같이 조치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이번 충원으로 514명의 대규모 수사조직이 됐다. 특수본은 본부장이 상급자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수사해 수사 결과만 보고하기로 하는 등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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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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