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특수본 '보고받았다' 발언 … 해명에도 논란 확산

경찰청장 집무실 등 55곳 압수수색 … '윗선 수사' 시험대

윤희근 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로부터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 받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셀프 수사'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윤 청장은 뒤늦게 발언을 정정했지만 일부 내용은 특수본 내부 수사 비밀로 알려져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윤 청장을 비롯해 경찰 지휘부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자칫 수사 결과의 공정성 자체를 의심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특수본은 8일 오전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등 55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윤 청장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특수본에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집무실이나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했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현재까지는 하지 않았고 추가로 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국회 행안위 이태원 참사 현안 질의 |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왼쪽부터), 윤희근 경찰청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김승호 인사혁신처장이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윤 청장은 이날 오후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업무보고에서도 이같은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윤 청장은 '이 전 서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냐'는 질문에 "정확한 내용은 보고받지 않았지만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용산경찰서의 핼러윈 축제 관련 정보보고 문건이 삭제되고, 그 과정에서 증거인멸과 회유 정황이 있다'는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이 삭제지시를 했다고 보고 받았다"고 답했다.

발언을 이어가던 윤 청장은 행안위 현안보고 후반부에 "수사를 자꾸 물으시는데 지휘·보고받지 않는다. 특수본이 잘할 것으로 신뢰한다"며 해명했다.

하지만 발언 내용 중 일부는 특수본만 알 수 있는 수사 사항이라 논란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수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도 이 전 서장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 여부와 용산서 보고서 삭제 지시자가 누군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윤 청장이 별도 통로로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수사 초기 논란에 특수본 당황 = 압수물 7013점을 확보해 본격적인 분석 작업 중인 특수본은 수사 초반부터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특수본 출범 전부터 정치권 등 경찰 안팎에서 '셀프 수사' 논란이 이어졌다.

김동욱 특수본 대변인은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특수본은 독립된 수사기관으로, 수사와 관련된 사항을 경찰청 등 어떤 기관에도 보고하거나 공유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공정성 논란을 의식해 특수본이 독립성을 보장받아 수뇌부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수사 결과만 보고한다고 밝혔다.

윤 청장도 지난 1일 특수본 구성을 지시하며 "수사 진행 상황은 보고받지 않고 수사 결과만 보고받겠다"며 수사 독립성 보장을 약속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논란이 사실로 확인되면 경찰 수사가 무리돼 결과가 나오더라도 '셀프 수사'란 비판이 계속되면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청은 "언론보도 등 관련한 주변 얘기들을 습관적으로 '보고'라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경찰·소방·지자체·도시철도 모두 수사 대상 = 이런 가운데서도 특수본의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특수본는 8일 오전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등 55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는 2일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8곳에 대한 압수수색 후 6일 만이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는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 집무실이 포함됐다. 또 서울경찰청 정보·경비부장실과 112상황실장실, 용산경찰서 정보·경비과장실도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특수본은 용산구청에도 수사 인력을 보내 용산구청장실과 부구청장실, 행정지원국·문화환경부 사무실, CCTV 통합관제센터 등 19개소를 관련 자료 등을 확보 중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서울종합방재센터 종합상황실, 용산소방서 등 소방 관련 7곳과 서울교통공사 본부, 이태원역 등도 압수수색 중이다.

특수본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주요 피의자와 참고인의 휴대전화와 핼러윈 축제 관련 문서, 관련 CCTV 영상파일, 컴퓨터 저장 정보 등을 확보할 계획이다.

특수본은 앞서 7일에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했다.

이 전 서장은 참사가 발생한 지 50분 뒤에야 현장에 도착하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에 보고를 지연한 데 대해 직무유기 혐의가 추가됐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이 사고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했다고 상황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해당 보고를 작성한 상황실 직원을 이날 오후 소환해 조사했다. 또 상황실과 현장 인력 등 용산서 직원 14명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이 전 서장의 지휘 책임과 함께 용산서 소속 경찰관들의 과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최 소방서장의 경우 참사 발생 당시 경찰과 공동대응 요청을 주고받고 현장에 출동하는 과정에서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정황이 경찰에 포착됐다.

박 구청장에 대해서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할 주무 지방자치단체인 용산구청이 적절한 재난안전관리 조치를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특수본은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한 류미진 총경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했다. 류 총경은 서울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을 벗어나 참사 사실을 지휘부에 제때 보고하지 못했다.

또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 근무하면서 류 총경에게 사고 발생 84분 뒤 이를 보고한 서울경찰청 상황3팀장을 조만간 소환할 예정이다.

한편 특수본은 '윗선' 수사 가능성도 내비쳤다. 윤 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 역시 사전대비와 사고 당시 조치를 적절히 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의 법령상 책무와 역할에 대해서도 법리적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관련기사]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