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완화

기업반발에 외부감사 약화 '신호탄' 우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로 단행된 회계개혁이 4년 만에 전면 후퇴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기업의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해 도입된 제도의 실효성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금융당국이 기업 반발에 떠밀려 제도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6일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에 따르면 한국회계학회는 10일 '회계개혁제도 평가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발표된 연구자료와 논의를 바탕으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주기적 지정제는 기업이 감사인(회계법인)을 6년간 자유롭게 선택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로 소위 '6+3'으로 불린다. 기업과 감사인의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고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위는 현재 '6+3'을 '9+3' 또는 '6+2'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이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는 기간을 9년으로 늘리거나,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기간을 2년으로 줄이는 내용이다. 기업부담을 줄여서 재계의 반발을 달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자본시장과 회계업계에서는 회계개혁의 뿌리격인 주기적 지정제를 손대는 것은 개혁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시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왜 주기적 지정제를 시행했는지를 되새겨보면, 회계 감사인이 돈을 주는 사람(감사보수를 주는 기업)의 목에 칼을 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라며 "제도 시행 이후 '6+3'의 효과를 확인하려면 최소한 9년이 지나야 하는데, 한번의 주기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회계업계의 반발이 커지면서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주기적 지정제 완화에 공식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회계개혁의 뿌리를 흔든다는 점에서 주기적 지정제 완화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어떤 식의 조정이든 반대한다"고 말했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의 규제 완화 방침과 맞물려 회계개혁을 좌절시키려는 움직임은 커졌다. 기업들의 반발에 금융당국은 자산 1000억원 미만 상장사에 대한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면제를 추진했고 국회에서 법률개정안이 통과됐다.

중견회계법인의 한 대표 회계사는 "그동안 금융당국이 점진적으로 회계개혁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이번 주기적 지정제 완화는 향후 기업에 대한 외부감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중요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며 "시장에 주는 메시지가 다른 어떤 제도 개편보다 강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 반발에 후퇴하는 회계개혁"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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