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외부감사 대상 내년부터 확대 … 공익법인·사립대학 주기적 지정제 시행

기업 '주기적 지정제'는 완화 검토 … "기업 감사 약화되면 비영리법인에도 영향"

정부가 공익법인과 사립학교, 노동조합 등 비영리부문의 회계투명성 향상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달리 기업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한 회계개혁제도는 완화하는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13일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사립대학과 공익법인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4+2)가 시행됐으며 내년부터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대한 외부감사 대상도 확대된다. 사립대학과 공익법인은 4년간 감사인(회계법인)을 자유롭게 선택했다면 이후 2년은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4+2' 방식으로 도입됐다. 기업이 먼저 '6+3'을 도입·시행에 들어갔고 비영리법인에도 감사인 지정제를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기업에 적용한 '6+3'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0일 한국회계학회가 개최한 '회계 개혁 제도 평가 및 개선 방안' 심포지엄에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비롯한 회계개혁제도들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송병관 금융위원회 기업회계팀장은 "회계제도와 외부감사는 엄격할수록 좋지만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시키면 주주의 투자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며 "회계 부담이 어느 정도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 비용 수준이 성장에 배분해야 할 기업 자원의 상당 부분을 할애할 정도로 크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별로 좋을 게 없다"고 밝혔다. 송 팀장은 "비용이 과도한 부분은 튜닝(조정)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회계개혁이 후퇴하면 그 여파는 비영리법인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주기적 지정제를 완화할 경우 비영리 법인들도 '우리는 주기적 지정제를 왜 하느냐'는 불만과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느냐"며 "비영리 법인을 상대로 회계제도를 강화한 가장 큰 논거 중 하나가 기업에 대한 회계감사 강화였는데, 기업이 후퇴하면 비영리 부문 감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품질 향상 효과 있지만 … 기간 짧아 효과 분석 제대로 못해 = 한국회계학회가 개최한 '회계 개혁 제도 평가 및 개선 방안' 심포지엄에서는 금융당국이 학계에 맡긴 연구용역 결과가 발표됐다. 정석우 고려대 교수, 황문호 경희대 교수, 오명전 숙명여대 교수, 최승욱 경희대 교수가 연구팀에 참여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상장회사의 1만3526개 표본을 추출, 회계개혁제도 시행의 전반적 영향을 분석했다.

회계개혁으로 도입된 주요 제도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표준감사시간제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등 3가지다.

연구결과 주기적 지정제는 도입 이후 지정기업의 감사보수와 감사시간 등이 유의하게 증가했으며 감사품질 역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표준감사시간제' 역시 감사투입시간이 유의적으로 증가했고 감사품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의 경우 감사조정이 유의적으로 감소했지만 감사보수 등의 비용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회계개혁의 효과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밝혔지만 제도 시행 기간이 짧아서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됐다.

연구팀은 "주기적 지정제도가 시행된 초기 2개년의 자료만을 활용한 분석의 한계점을 이해해달라"며 "한 싸이클(6+3) 시행된 이후,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반드시 재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석우 교수는 "주기적 지정(3년)이 풀리고 (감사인을) 자유선임하게 되면 지정 감사인이 더 이상 감사를 맡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인 강제교체'가 발생한다"며 "그럴 경우 감사보수 할인현상 등이 나타나는데, 그걸 볼 수 있는 데이터가 없었다"고 말했다.

주기적 지정제 시행 첫 해에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들은 지난해까지 3년이 지났고, 올해 지정제가 풀리면서 감사인을 자유선임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연구팀은 지정제가 풀리고 감사인을 다시 자유선임한 기업들의 감사품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었다. 최소 9년의 시간이 지나야 제도 시행 후 한 싸이클이 도는 것이어서 불과 4년 만에 제도 시행의 온전한 성과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 교수는 "(기업이나 회계업계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제도 시행의 연구결과가 완벽하게 나오지 않았는데 (자유선임 기간을) 6년으로 할 것인지, 9년으로 할 것인지 바꾸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회계업계는 현행 '6(자유선임 기간)+3(지정 기간)'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인 반면 재계는 자유선임 기간을 12년으로 완화하거나 지정 기간을 2년으로 줄여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금융당국은 '9+3' 또는 '6+2'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면서 완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제도 완화에 필요한 논리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

연구 실증분석결과 지정감사 전 계속감사기간(6년 이하, 6~9년, 10년 이상)에 따른 체계적인 차별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각 지정연차(1년차, 2년차, 3년차)별로도 유의한 감사품질 차이는 식별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자유선임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9년으로 확대되더라도 회계투명성을 크게 저해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비영리부문 외부감사 대상 지속 확대 = 정부는 회계개혁을 통해 기업 회계감사를 강화한 이후 비영리부문의 외부감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19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해 공익법인을 대상으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를 도입,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사립대학 역시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됐다. 둘 다 기업보다 강화된 '4+2' 제도다.

오피스텔과 상가 등 집합건물의 경우 150호실 이상은 매년 1회 이상 회계감사를 받도록 2020년 법률이 개정됐고,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외부감사 대상이 300세대 이상이었지만 내년부터 의무관리대상(150세대) 공동주택으로 확대됐다.

연간 국고보조금을 10억원 이상 받는 민간 보조사업자도 2021년부터 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외부감사를 받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국고보조금 규모를 3억원 이상으로 낮춰서 외부감사 의무를 부과할 민간 보조사업자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내용의 법률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되면 약 2000여개 비영리법인이 회계 감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노동조합에 대한 회계투명성 강화도 추진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1일 조합원 수가 1000명 이상인 노조와 연합단체 총 334곳에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 등 비치·보존 의무 이행 여부를 15일까지 보고하라며 공문을 보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노조의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300인 이상 대규모 노조는 매년 회계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노조 회계감사자의 자격을 공인회계사 등 법적 자격 보유자로 하는 내용이다. 또 예산·결산서 등 노조원이 열람할 수 있는 회계자료 목록을 구체화했다. 그동안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비영리부문의 회계감사 영역에 대한 전 방위적인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전 교수는 "기업에서 회계개혁이 틀어지면 비영리부문 등 사회 전체적으로 회계감사를 풀어줘도 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어서 굉장히 우려 된다"며 "주기적 지정제는 모든 기업에 한번은 적용해 본 뒤에 개편 여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표준감사시간제는 기업측의 의견을 반영해 상당히 완화됐다"며 "제도 시행 과정에서 일부 조정은 필요하겠지만 전체적으로 회계개혁의 큰 틀은 바꾸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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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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