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개혁 주도 '최중경 전 장관' 경고 … "제도 완화, 세계적 웃음거리 될 것"

중견·중소회계법인 육성 … 회계기본법 제정, 감독기구 강화 등 갈 길 멀어

"회계개혁의 초심을 잃으면 안됩니다. 개혁은 긴 호흡이 필요한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원래의 정신을 잃고 제도를 손대기 시작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15일 감사인연합회가 주최한 감사인정책세미나에 강연자로 참석, 현재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회계개혁제도 개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진 한국공인회계사회 제공


15일 한국공인회계사회장을 지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현 한미협회 회장)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회계개혁제도 개편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강하게 경고했다.

회계개혁의 핵심 제도 중 하나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완화하는 방안 등을 금융위원회가 검토하는 것에 대해 쓴 소리를 한 것이다. 주기적 지정제는 기업이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6년간 자유롭게 선택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것을 말하며 소위 '6+3'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 전 장관은 "제도를 시행하고 최소한 '6+3'(9년)이 끝난 다음에 제도 개편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금융당국은 4년 만에 제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는 "주기적 지정제를 도입한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국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기업들이 불편을 호소한다고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회계개혁의 기본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전 장관은 또 "기업의 지배구조가 회계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도가 시행됐는데 선진국 수준으로 (지배구조가) 올라갈 때까지는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계투명성 위해 '필요한 불편함' 감수해야"= 그는 "기업들이 필요없이 많은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줄여줘야겠지만 '필요한 불편함'은 감수해야한다"며 "일부 기업들의 불만에 개혁의 호흡을 끊어서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최 전 장관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맡아 회계개혁 제도를 도입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이날 한국감사인연합회가 개최한 '제12회 감사인정책세미나'에서 '회계는 역사적으로 왜 중요한가'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는 선진국과 다른데도 선진국의 자유선임제(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자유롭게 선택)를 그대로 도입했다"며 회계개혁 이전 감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기업 지배구조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감사위원회의 역할이 미약하기 때문에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주기적 지정제 도입이 필요했다는 점을 설명했다.

최 전 장관은 "회계감사를 받는 자(기업 CEO와 CFO)가 회계법인을 선임하고 감사보수를 결정하는 것은 이해상충의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회계개혁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 채 데이터를 추적한 뒤에 (개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회계개혁은 (기업과 회계업계의) 정책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고, 시행한 지 몇 년 만에 제도를 바꾸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전 장관은 "회계개혁을 통한 회계투명성 제고는 장기적으로 기업들이 발전하는 것"이라며 "국민(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제도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계업계 경쟁력 강화 과제 = 금융당국이 현재 논의 중인 회계개혁 개편은 주로 기업의 부담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개혁제도를 전체적으로 보완·강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며 아직까지는 회계투명성 향상을 위해 갈 길이 멀다.

회계개혁으로 감사인등록제가 시행되면서 상장법인 외부감사는 금융당국의 심사를 거친 등록회계법인들로 제한됐다. 현재 40개 회계법인이 등록한 상태다. 대형 회계법인인 빅4(삼일 삼정 안진 한영) 중심의 회계시장에서 중견·중소회계법인의 경쟁력을 끌어 올려 상장회사의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올해 금융당국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의 외부감사인 지정을 사실상 빅4 회계법인으로 제한했고, 하향 재지정을 막았다. 기업과 회계법인(감사인)은 규모에 따라 가~라군으로 분류되는데, 하향 재지정은 상위그룹의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이 그보다 낮은 그룹에 속한 감사인(일정 규모 이상으로 제한)으로 금융당국에 다시 지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기업이 빅4 회계법인으로 지정을 받으면 다른 회계법인으로 재지정 신청을 할 수 있지만, 감사위험이 높은 지정사유(누적적자, 관리종목, 감리조치 등)는 하향 재지정을 아예 차단했다.

주기적 지정제 도입 이후 감사 시장은 빅4 비중이 줄어들고 중견회계법인은 급성장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중견회계법인의 지정 감사 매출은 40~50%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은 품질관리를 위해 상당히 많은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매출이 감소하면서 투자여력이 줄었다. 중견회계법인의 한 대표 회계사는 "회계업계 전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을 단행했지만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이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며 "감사품질 향상을 위해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이 노력해야 하지만 금융당국도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독당국 전문성 약화 우려 … 회계감독기구 설립 필요 = 회계법인의 감사업무를 관리·감독하는 금융당국의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종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증권선물위원회 위원)는 "단기적으로 회계감독부서를 확대하고 부서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감독당국의 회계사 인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회계감사 강화는 회계사 수요 증가로 이어졌고 시장에서 회계사들의 보수는 급격히 상승했다. 현재 회계감독부서는 금융감독원 산하에 있어서 금감원 신입채용으로 인력이 충원되고 있다. 최근 시장과의 연봉 격차가 확대되면서 금감원에 지원하는 회계사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그동안 금감원 신입직원 선발시 경영직군 합격자 대부분은 회계사 출신으로 매년 20여명 가량이 입사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7명, 올해는 6명으로 가파르게 감소했다. 기존 인력 중에서도 회계업계 등으로 빠져나가는 인원이 늘면서 전문성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감원은 경력직 채용을 늘리겠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지원자가 얼마나 될지 몰라서 불안한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원자가 적어서 미달사태가 발생하면 심각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며 "올해 진행될 경력직 채용 지원율이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회계업계에서는 별도의 회계감독기구를 만들어서 보수체계를 달리 가져가야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회계감독당국인 미국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를 두고 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PCAOB를 감독하는 구조다. SEC와 PCAOB에 등록된 회계·공시 부서 인원은 1254명(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금융당국의 170명과 비교하면 7.3배 가량 많다. 회계감독당국의 예산은 미국 5160억원, 한국은 297억원으로 17배 이상 차이가 난다.

국내 회계 관련 정책 수립은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 산하 기업회계팀(4명)이 맡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 교수는 "국내 상장회사의 시가총액 등을 고려할 때 정부의 1개팀에서 회계정책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기 과제로는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 등 조직별로 회계 관련 법률이 분산돼 있는 것을 통합해 '회계기본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

영리법인은 상법·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에 근거해 금융위원회가 회계감사 전반을 감독하고 있지만 공익법인과 사립학교, 의료기관 등은 각각 상증세법(주무관청 기획재정부), 사립학교법(교육부), 의료법(보건복지부)에 따라 제도가 시행·운영되고 있다. 회계기준도 각기 다르다. 영리법인은 K-IFRS(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와 일반기업회계기준이 적용되지만, 공익법인은 공익법인회계기준, 교육부는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의료기관은 의료기관 회계기준규칙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박 교수는 "조직별로 용어가 다르고 여러 기관에서 독자적으로 회계와 관련된 정책을 진행하다 보면 비효율이 발생한다"며 "사회 전반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통합된 회계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반발에 후퇴하는 회계개혁"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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