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상황 가정한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반영 '추가자본 적립의무' 추진

급증한 대출, 부실 가능성 점차 커져 … '경기대응완충자본'도 가동

5대 은행 성과보수체계 점검 … "희망퇴직금, 주주총회에서 평가 검토"

국내 은행들이 경제 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금융당국이 자본과 충당금의 추가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된다.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와 시그니처 은행이 파산하고 크레디트 스위스(CS) 은행 위기설이 불거진 가운데 정부가 국내 은행의 건전성 강화에 나선 것이다.

올해 1월에 발표한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 도입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을 가정한 스트레스테스트결과를 토대로 자본의 추가적립을 의무화하는 스트레스완충자본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그동안 추가 적립이 없었던 경기대응완충자본제도 역시 2~3분기에 본격적으로 가동돼 은행들이 추가로 자본을 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1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3차 실무작업반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은행권 건전성 제도 정비 방향을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금융당국은 "은행별 리스크관리 수준,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등에 따라 차등적으로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스트레스테스트는 위기상황을 가정하고 위기상황 하에서 은행의 적정자본 유지 여부 등 손실흡수능력을 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는 테스트 결과에서 자본 적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나와도 금융당국이 개별 은행에 추가자본을 적립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주요국가 대비 자본적정성 미흡 = 미국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대형 은행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은행별로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차등해서 부과하고 있다. 지난해 30개 이상 은행에 대해 최소 2.5%에서 최대 9.0%의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했다.

유럽연합(EU)도 유럽중앙은행(ECB)이 대형 은행에 대해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포함한 리스크평가 결과에 따라 은행별로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차등 부과하고 있다. 지난해 100개 이상 은행에 대해 최대 4%의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했다.

국내 은행은 지난해 9월말 기준 보통주자본비율이 12.26%로 규제비율(7~8%)보다 높지만 채권평가손실 등으로 2021년말 12.99%에 비해 하락했다. 주요국가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은 EU 14.74%, 영국 15.65% , 미국 12.37% 등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주요국과 비교시에도 자본적정성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상황이며, 최근 배당확대 움직임으로 인해 향후 자본비율 하락 가능성도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가적으로 해외사례를 고려해 적립신호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도 예상치 못한 외부충격(전염병,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해 상시적으로 자본여력(버퍼)을 유지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금융당국은 이와함께 그동안 급증한 은행권 여신의 부실화 가능성에 대비해 올해 2~3분기 중에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2016년 도입된 경기대응완충자본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경기대응완충자본은 대출 등 신용공급이 증가하는 시기에 은행에 추가자본을 최대 2.5%까지 적립토록하고, 신용경색이 발생하는 시기에는 자본적립 의무를 완화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를 고려해 그동안 적립수준 0%를 유지했지만 2~3분기에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은행에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할 계획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SVB 사태 등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불확실성 우려가 높아진 만큼, 금융권의 건전성 제고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경기대응완충자본 등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이 최근의 선진적 자본규제 및 연구방향에 부합한다"며 "은행권 건전성 규제 강화시 비은행권으로의 풍선효과가 있을 수 있으므로, 비은행권의 건전성도 균형감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과보수체계 투명하게 공시해야" = 이날 실무작업반 회의에서는 주요 은행들의 성과급 등 보수체계 현황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됐다.

은행권의 대규모 수익이 임직원의 노력보다는 코로나와 저금리 지속 등으로 대출규모가 급증한 상황에서 최근 금리상승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성과급이 사실상 고정급화돼 있다는 비판도 언급됐다.

김 부위원장은 "성과보수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외부적 요인보다는 실질적 성과에 따라 중장기적인 측면을 고려해 지급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 성과보수체계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등 은행권이 스스로 개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희망퇴직금은 은행의 경영효율화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으나 상당히 큰 규모의 비용이 소용되는 의사결정인 만큼, 주주총회 등에서 주주로부터 평가받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 인건비 비중과 개별 보수의 구성, 희망퇴직금 등에 대해 국내 은행과 글로벌 주요은행을 비교분석해 추가 개선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김 부위원장은 "은행의 주주환원·배당은 단순히 주주의 문제가 아닌 국민과 금융시장 참여자 등 이해관계자까지 고려해 보다 폭넓은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성과보수체계의 경우, 경기의 진폭을 완화할 수 있게 설계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단기적 성과 뿐 아니라 장기적 성과까지 평가하고 지급방법도 이연지급하는 한편 지급수단도 현금 뿐 아니라 주식·스톡옵션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성과보수체계를 단기적인 수익과만 연계하기보다는 자산건전성·자본건전성을 높이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등 은행의 공공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현재 기업가치 증대보다는 중장기적 미래가치 제고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논의된 5대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성과급 등 보수체계 현황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희망퇴직자 1인당 평균 총 퇴직금(기본+희망퇴직금) 구간은 5억~6억2000만원으로 나타났으며 단순평균금액은 5억4000만원이다.

2020년과 2021년 5억1000만원 보다 3000만원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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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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