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귀 삼정KPMG 전무이사, ESG 정보공시/인증 리더

올해 다양한 ESG 이슈 중 기업들이 우선 순위를 두고 시급하게 대응해야 할 과제는 ESG 공시기준 대응이다. 유럽지속가능성보고표준(ESRS), 국제지속가능성보고기준(ISSB S1/S2),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관련 공시 법안까지 모두 올해 확정되어 공시기준 표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국내 기업들도 최소 2~3개의 기준을 동시에 분석·대응해야 하며, 2025년으로 예상되는 국내 ESG 공시 의무화도 함께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기존의 자발적 보고 형식의 지속가능보고서 발행 절차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현행 지속가능보고서는 사실상 보고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발행 절차'라고 표현했다.)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ESG 공시체계 구축 방안에 대한 문의도 급증하고 있어 기업들의 성공적인 ESG 공시체계 구축을 위한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기업 특성에 따라 1~3년에 걸친 구축 로드맵을 고려하는 기업들이 많다. 국내 정책과 법규의 불확실성, 보고기준의 지속적인 업데이트 등을 고려할 때 빅뱅방식(일괄구축)보다는 단계별접근법(Phased approach)을 통해 공시체계를 점진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현재의 비공식적인 지속가능보고서 발행 절차를 단순히 체계화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로드맵 수립시에는 충분한 조직의 적응기간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조직별 책임과 역할(R&R)의 결정은 시간을 가지고 구성원 간 협의를 해야 한다. 현재시점의 단순한 R&R 결정 뿐만 아니라, 몇년간에 걸친 단계별 업무 분산 및 이관 계획도 포함되어야 한다.

퀵윈전략은 환상, 충실한 사전 영향분석을

일반적으로 경영체계 도입은 영향분석, 설계·구축, 적용의 3단계로 이루어진다. 필자의 경험상 속도전에 강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퀵윈(Quick-win)전략을 선호한다. 이를 위해 영향분석시 국내외 사례를 최대한 벤치마킹해서 빨리 마무리하거나, 모범경영(Best practice) 사례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ESG 공시체계는 다른 준법감시(Compliance)나 경영체계 구축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서 퀵윈전략의 위험성이 매우 크다. 무엇보다 업종·기업별 특성에 따른 영향도와 세부 추진과제 및 방법론이 너무 큰 차이가 난다. 또한 회사내 조직구조 및 업무절차, 기존 업무시스템과의 연계 수준 등이 IT시스템 설계시 대부분 맞춤형으로 되어야 한다.

사전 영향분석에서는 지속가능 경영전략과 지배구조 수준 진단, 보고경계와 대상사업장 선정, Scope 3 배출량 측정 및 재무 영향분석 이슈 식별, 내부통제 영향평가, 소프트웨어 및 공급업체 평가, 해외법인 및 공급망 영향분석 등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수행해야 한다.

본격적인 IT시스템 설계 이전에 전사적인 비즈니스 프로세스 분석이 심도있게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데이터 표준화와 수집 방안, 검증 가능성과 자동화 수준 등에 대한 검토가 중요하다. 이는 ESG부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전사적인 역량 집중이 필요하다. 전략, 재무·회계 및 리스크 부서의 적극적인 참여는 필수적이다.

중요한 점은 ESG 정보공시체계의 핵심인 IT시스템을 조직·프로세스·R&R 등에 대한 충분한 분석없이 도입할 경우, 계속 변화하는 ESG 공시기준의 특성상 중장기적으로 시스템이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

ESG 공시 관련 IT시스템에서 묘책은 없다

현재 국내외에 많은 ESG 시스템, 솔루션, 플랫폼, 크라우드서비스 등이 성장하며 경쟁하고 있다. 필자도 20년간 기업컨설팅을 하면서, 이렇게 수많은 솔루션이 단기간에 출시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ESG 공시 관련 IT 솔루션을 도입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낮추어야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기업들에게 좋은 대안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그 완성도는 천차만별이며 실증 업무를 통해 검증된 경우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기능적인 특화 영역과 서비스 범위도 차이가 크다 보니 장단점 분석도 용이하지 않고 몇가지 솔루션을 조합해야 요구기능을 충족하기도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 많은 국제회계기준 패키지 솔루션(IFRS package solution)과 내부회계관리제도 시스템이 시장에 난립했는데, 많은 경우 도입 후 사장되거나, 재구축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김진귀 삼정KPMG 전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