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용 인천대 교수, 동북아국제통상학부

중러관계에 대해 러시아 내부에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위안화 위세에 휘둘릴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하고, 통상산업정책에서 중국의 표준과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미 방향은 정해졌다.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면 '동방시장'으로의 회귀이고, 러중 경제통합이다.

중러관계를 바라보는 러시아 내부의 시각에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영향권 확대와 '조용한 침투'를 경계하던 전통적인 위협론과 신중론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반대로 관계 발전의 질적도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중러관계 긴밀화의 잠재력과 한계를 미중러 삼각관계의 틀에서만 주목해온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하기 어렵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전쟁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 탓인지 그저 이례적인 정상회담이라는 논평이 줄을 이었고, 시진핑 주석을 위한 러시아의 초특급 환대 분위기를 전달하며 러시아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현실을 강조하는 평가로 일관했다. 중러관계의 밀착을 외면하려는 전형적인 서방의 '관심분산' 전략이다.

서방 제재가 탈달러화동맹 강화시켜

러시아 내부의 관전평은 전혀 다르다. '친러편향적'인 중국의 태도가 강화됐고, 2019년 격상된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관계'는 더 견고해졌다는 평가다. 지난해 2월 러중관계의 기본원칙이 제시됐다면, 올 3월 정상회담은 그 원칙 위에 협력을 확대할 분야를 구체화했고,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직후 중국이 보여준 어정쩡한 태도와는 달리 결연한 자세로 러시아 편에 서기로 한 것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3월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서명한 공식문서는 공동선언문 협정 규약 프로그램 등 모두 14건에 달한다. 핵심문건은 2019년 합의한 '중-러 신시대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자'는 공동성명과 '2030년까지 중-러 경제협력의 주요 방향 발전 계획'에 관한 공동성명이다. 첫째 문건은 미국의 일방주의 패권주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맞서 양국이 세계질서 형성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다극체제를 만들어가자는 결의를 재천명한 것이다.

오히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광범위한 경제통상협력 내용이다. '2030년까지 중-러 경제협력의 주요 방향 발전 계획'은 △무역규모 확대와 무역구조의 최적화(전자상거래 및 디지털경제 활성화) △물류시스템의 발전(국경통관인프라 개선) △금융 협력수준 향상 △에너지 분야의 전면적 동반자관계 강화 △기초상품과 광물자원 공급 협력 강화 △기술 및 혁신 분야 협력 확대 △산업협력의 높은 질적 수준 달성(산업별 표준과 기술기준의 조화) △식량안보 차원의 농업 협력 수준 향상 등 총 8개 분야의 협력과제를 열거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 핵심을 금융 산업기술 교통물류 협력이라고 압축했다.

우크라전쟁이 발발한 2022년 한해 양국간 교역은 전년 대비 30% 급증했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급증 덕분이기도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루블·위안화 상호결제 체제가 촉진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작년 1~3분기 루블·위안화 결제 비중은 전체 상업거래의 65%에 달한다. 서방의 대러제재가 러중간 탈달러화 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 지향에서 동방으로 공간전략 변화

양국간 산업기술 협력과 교통물류 협력에 기울이는 관심은 각별하다. 현재 제재와 역제재의 대결이 금융에서 산업기술과 물류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제재가 장기 지속되면서 러시아는 산업·경제 '혁신'의 파트너를 중국에 의존하게 됐다. 최선은 아니지만 러중간 가치사슬 연계와 산업협력 긴밀화는 이제 현실적인 목표가 되었다. 또한 4200㎞에 달하는 긴 국경을 가진 양국이 교역증대를 위해 통관절차의 간소화를 비롯해 접경 지역 인프라의 단계적인 개선 등의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도 합의했다. 서방의 대러제재로 유라시아 복합물류체계의 혼란이 가중된 상황에서 양국을 관통하는 국제운송회랑의 통과잠재력을 극대화하는 협력은 절실하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 극동과 중국의 동북 3성간 국경무역을 원활하게 할 교통인프라 협력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은 언론담화에서 작년 중러 국경을 잇는 새로운 두개의 교통로가 개통된 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작년 6월 아무르강을 건너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 헤이허(黑河)와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블라고베셴스크를 잇는 총연장 1.08㎞의 2차선 자동차 대교가 개통됐다.

이보다 앞서 4월 말에는 러시아 극동 유대인 자치주의 니즈녜레닌스코예와 중국 헤이룽장성 퉁장(同江)을 연결하는 국경통과 철교가 완공됐다. 2014년 착공한 이 철교는 중국식 표준궤(1435㎜)와 러시아식 광궤(1520㎜)가 함께 부설된 복합궤도 철교다. 이 철교 개통으로 헤이룽장성~모스크바 운행거리는 쑤이펀허 구간보다 809㎞ 줄고 운송시간은 10시간 단축됐다.

30여년 전 양국이 합의한 프로젝트가 지금에서야 구현됐다는 것이 그만큼 중러 접경협력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만, 달리 보면 중러관계의 '신시대'를 알리는 기념비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중러관계가 물리적으로 연계되고, 구조적으로 긴밀화되는 추세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외교정책 책사로 알려진 러시아 고등경제대학의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을 평가하며 중러 경제협력이 '경제통합'으로 노선을 전환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향후 20년간 서방과의 협력 가능성은 기대할 것이 없기에 신속하게 '동방시장'으로 방향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지금까지 시베리아의 발전이 배제된 채 극동 중심으로 사고했던 신동방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며, 신전략은 동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튀르키예를 넘어 이란과 인도로 확장될 수 있도록 공간전략을 재편하고, 노보시비르스크 크라스나야르스크 이르쿠츠크 등 시베리아 도시들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극동의 저명한 중러관계 전문가인 빅토르 라린 박사도 러시아 외교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신동방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러시아 중앙의 엘리트는 유럽의 일원이 되려는 미련을 못 버렸고, 극동의 변경지역을 이용하려고만 했지 '동방으로의 전환'을 제대로 모색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그는 현재 중러 경제관계가 일방적이기보다는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대중국 의존성 그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어떻게 공동이익을 장기간에 걸쳐 보다 효과적으로 연계하면서 접점을 찾을지 고민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내부 우려 있지만 방향 이미 결정돼

러시아 내부에 대중국 의존도 심화에 대한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위안화 위세에 휘둘릴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하고, 통상산업정책에서 중국의 표준과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닌지 두려움도 존재한다. 그러나 다급한 현실에서 이미 방향은 정해졌다.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면 '동방시장'으로의 회귀이고, 러중 경제통합이다.

중러관계의 미래를 바라보는 러시아의 입장은 신외교정책개념(3월 31일 발표)에서도 확인된다.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러시아가 직면한 국제환경과 지정학적 현실을 반영한 신외교정책개념은 2013년, 2016년의 외교정책개념들과 전혀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2023년의 신개념에는 세분화된 지역 단위의 대외정책 대상을 적시했다. 유럽과 앵글로색슨 국가가 맨 뒤에 배치된 반면, 유라시아대륙이 분리 독립되어 강조되었고, 여기에 중국 인도와의 협력이 구소련공화국을 명시하는 '근외' 지역 바로 다음에 배치됐다. 무게중심이 완벽하게 역전된 것이다. 아쉽게도 남북한과 일본은 전체 문건에서 단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중러관계의 미래를 의심할 단계는 지나갔다. 3월 중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유라시아 안보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잠재력과 역할을 강화하고,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일대일로'의 연계 발전 등을 가속화하며 글로벌 다극체제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지금 러시아 국내여론은 '시간은 러시아와 중국 편'이라는 확신으로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