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자체장에 좌우되지 않는 운영 체계 갖춰 … 도서관·사서·시민들, 공동체 현안에 보다 관심갖고 참여하기를

기적의도서관 건립운동은 20년 전 MBC 예능프로그램 '느낌표'를 통해 시민들의 관심과 성금을 바탕으로 시작했다.

2003년 1호관인 순천기적의도서관을 시작으로 지난해 여주기적의도서관까지 총 16개관이 문을 열었다. 기적의도서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건립하며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운영과 혁신적 공간 등으로 호평받아왔다.

김승현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이용훈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은 9일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기적의도서관의 가치와 의미, 앞으로의 방향을 짚었다.

9일 순천기적의도서관에서 김승현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가장 왼쪽), 이용훈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가운데),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가 기적의도서관의 가치와 의미, 앞으로의 방향을 짚었다. 사진 순천기적의도서관 제공


새로운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열망

송현경 기자: 기적의도서관은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나.

이용훈 회장: 김대중정부 때 문화기반시설 평가를 처음 시작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문화 분야 시민운동을 하게 돼 '문화연대'가 만들어졌다. 그 안에 출판도서관 분과가 만들어져 활동했다.

이후 도정일 선생님 제안으로 도서관을 활성화시키자는 취지로 독립해 '도서관콘텐츠확충과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만들었다.

여러 활동을 하는 가운데 MBC '느낌표'와 함께 책읽기 운동을 하면서 기부금이 쌓였다. 이를 기반으로 도서관을 건립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 책을 읽는 문제를 도서관으로 풀어가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독서실 같은 공부방 위주 공공도서관이 대부분이었다. 기적의도서관을 경험한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면 제대로 된 도서관문화를 요구하고 향유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안찬수 이사: 새로운 세계인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중요한 담론으로 떠오른 것이 지식정보사회였다. 그런데 그 근간이 되는 도서관이 입시 위주 교육의 부속물처럼 공부방 독서실로 치부됐다. 이를 개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모두 갖고 있었다. 지역사회에서도 풀뿌리 운동으로 새롭게 도서관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순천기적의도서관 외부. 사진 순천기적의도서관 제공


다른 지자체들이 참고하는 도서관

송현경: 기적의도서관은 기존 공공도서관과 어떤 차별점이 있나.

안찬수: 관리자의 관점이 아니라 어린이의 관점을 가장 중시했다. 도서관에 온돌마루를 깐 첫 사례다. 또 어린이들이 숨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락방 등을 만들었다.

공간에 높이의 변화도 줬다. 계단이나 층고의 변화 등이 그렇다. 어린이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 그러면서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을 갖추려고 했다.

건축을 고 정기용 건축가가 맡았다. 각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어린이들이 원하는 공간을 경청했다. 특히 대나무 등 자연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우주를 생각하는 미래의 어린이들을 키우고자 한 공간이다.

순천기적의도서관 내부 . 사진 순천기적의도서관 제공


송현경: 운영은 어떤가.

안찬수: 도서관 운영이 특정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했다. 지역사회 학교 등 여러 기관 단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운영하는 운영위원회를 두고 도서관 운영 전반을 논의했다.

기적의도서관은 지역 전체에도 영향을 줬다. 기적의도서관을 유치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하면서 순천은 이에 자부심을 갖고 도서관운영과를 신설해 도서관정책을 더욱 활성화하고자 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도서관에 대한 투자와 정책을 고민했다.

김승현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순천기적의도서관은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졌다. 처음 기적의도서관 1호관 건립지로 순천이 선정될 때 시민들의 노력이 컸다.

기적의도서관 건립 이후 '도서관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원활동가를 양성해왔다. 시민들이 책을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성장했다. 이제 시민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서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다른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안찬수: 도서관이라는 신뢰의 공간, 믿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굉장히 큰 힘이다. 순천기적의도서관 개관 초기, 당시 관장이 저녁 때 전화를 했다. 직원들이 다 가고 퇴근해야 하는데 한 아이가 남아 있다고 했다. 그때 그 아이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도서관에 있으면 안전하고 누군가는 보살펴줄 것이고 책이 있으니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도서관을 기반으로 시민들은 성장한다. 여러 지자체를 방문해 보면 기적의도서관을 유치한 지자체는 시민들을 아래로 보지 않고 존중한다. 도서관이 잘 돼 있는 지역은 굉장한 잠재력이 있다.

이용훈: 개관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다른 지자체에서 순천기적의도서관을 방문해 참고한다. 민간에서 먼저 시작해 건립됐지만 사립 공공도서관으로 남지 않고 지자체 공공도서관으로 운영되는 것이 의미가 있다. 기적의도서관이 깊이 있게 운영되는 것을 보면서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하고자 하는 다른 지자체들이 참고할 수 있다.

기적의도서관 이후 어린이도서관 건립이 굉장히 늘어났다. '저런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늘었고 지자체에서 이를 수용했다.

안찬수: 기적의도서관은 공공도서관 프로그램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지금은 많은 도서관들이 '작가와의 만남'을 하지만 당시엔 그런 프로그램이 없었다.

시인 작가 등이 도서관에서 주민들을 만나는 '문학의 순회대사' '문화예술의 순회대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저자들과 출판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승현: 도서관을 리모델링하면서 개인 독서실인 공부방을 없애려고 하면 '없애지 말라'는 민원이 많다. 그런데 순천의 경우 기적의도서관을 통해 공부방이 없는 도서관을 경험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느낀 주민들이 많아서인지 그런 민원이 거의 없다.

면 단위 기적의도서관 짓는 실험

송현경: 기적의도서관 2.0은 무엇일까.

안찬수: 기적의도서관이 이미 성과를 냈다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의제를 설정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아직도 기초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서관이 없는 지역들이 있다. 도서관에 대한 지역 격차가 크다. 그래서 기적의도서관을 성인 대상으로도 운영하려고 한다. 최근엔 면 단위 지역에 기적의도서관을 짓는 실험을 했다. 소멸위기인 지역에 도서관을 짓고 어떤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을지 보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도서관이 참 우수하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한국에 오면 그 도서관은 가 봐야 한다'는 사례를 더 많이 만들었으면 한다.

이용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국내 도서관들은 창의적인 서비스들을 계속 했다. 'K-라이브러리'라는 용어도 그때 나왔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공공도서관의 인력이 순환근무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근무하는 도서관의 서비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례 연구를 하기가 쉽지 않다. 행정 분야에도 지역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기관의 경우 공무원들이 장기간 근무하도록 하면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다.

김승현: 기적의도서관 20주년을 맞아 순천에서 도서관 어린이서비스 아이디어·우수사례 공모전, 순천독서문화포럼을 진행한다. 환경변화에 따른 어린이도서관 미래전략과 방향에 대한 연구와 고민들을 모아 기적의도서관 2.0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안찬수: '좋은 나라,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좋은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도서관은 모든 것의 기반이 된다. 모든 주제가 도서관의 책에 다 담겨있다. 개인적 관심을 넘어 공동체 현안이 다 도서관과 연결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의 기반을 넓혀나가기 위해 책이 있어야 하고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도서관과 사서, 시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현안에 관여하고 참여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어린이 도서관" 연재기사]

순천 = 정리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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