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 주제들로 분류된 책 통해 영감 얻어·책 만들고 출판사 차리며 또래 작가 섭외하기도 … "도서관의 가능성에 주목"

1일 방문한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모야랩'. 도서관 '제3의 시간' 5층에 위치한 모야랩은 어린이들이 나무와 종이 등 각종 재료들을 활용해 다양한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는 어린이 전용공간이다.

5층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공간은 수장고. 수장고에는 '모야랩'을 이용하는 어린이들과 3~4층 청소년 전용공간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만든 창작품들을 전시해뒀다.

이곳에는 넓은 종이바닥에 종이로 벽을 만들어 이어붙여 미로를 만든 창작품도 있고 위아래로 길게 휴지심들을 이어붙여 건물 형태로 꾸민 창작품도 있다.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재료와 필요한 장비들은 모야랩에서 모두 제공한다. 어린이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고 싶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이작업실 '모야랩'. 사진 이의종


◆창작자로 주체적 활동 = 수장고에 처음 들어선 어린이들은 다른 어린이들의 창작품을 보면서 '나도 이곳에서 이런 것들을 만들 수 있겠구나'라며 창작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과 함께 터널로 된 입구를 통과하면 모야랩에 창작자로서 들어서게 된다.

신혜미 도서문화재단 씨앗 실장은 "모야랩에서는 어린이들이 창작자이자 작업자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환기를 주기 위해 공간적 청각적 장치를 만들었다"면서 "자신이 작가로, 작업자로 주체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불어넣고자 했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창작품이 전시된 모습. 사진 이의종


입구를 빠져나오면 바로 만나는 공간에는 어린이들의 창작품이 책과 함께 비치돼있다. 모야랩은 도서관 속 공간인 동시에 창작을 하는 공간이기에 어린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창작에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책을 갖췄다.

도서문화재단 씨앗은 지난 1년 동안 어린이들의 창작품을 분석해 관심사를 도출했다. 그에 맞춰 책들을 △건축과 집 △관계와 감정 △동물과 식물 △모험과 여행 등 13개의 주제로 분류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어린이책만 갖추지는 않았다. 그림으로만 구성된 그림책, 원서, 인테리어책 등도 비치됐다. 어린이들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책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이라는 물성을 느끼면서 흥미로운 그림이나 장면에 반응하며 책장을 넘기고 이를 작품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면 충분하다.

책이 있는 '모야랩' 공간. 사진 이의종


◆재료 보면서 자극 받아 = 보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어린이들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조성된 모야랩의 곳곳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눈길을 끄는 곳은 다양한 재료를 갖춘 '재료바'(재료bar)다. 어린이들이 익숙하고 때론 낯선 다양한 재료들을 바탕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130여개의 재료와 장비들이 갖춰져있다. 종이컵 빨대 휴지심 목재 나사 고리 병뚜껑 스프링 고무줄 전선 등 다양하다. 종이컵도 하나의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크기가 비치돼있고 빨대만 무려 4가지 종류가 구비됐다.

맞은편엔 망치 드라이버 톱 드릴 니퍼 등 다양한 장비도 갖췄다. 만들기 작업을 하는 어린이들이 목재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바이스'라는 전문장비도 있다. 어린이들은 이를 이용해 목재를 고정하고 톱질을 한다. 보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어린이들이 책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색연필 물감 붓 등 다양한 채색도구들과 개수대가 마련돼있다.

신 실장은 "어린이들이 다양한 재료들을 통해 작품의 영감과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어린이들이 재료의 이름은 몰라도 재료의 형태를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투명한 재질의 통 안에 재료들을 넣어두고 한눈에 볼 수 있게 비치했다"고 말했다.

재료바. 사진 이의종


◆협업하며 거대한 작품 만들어 = 모야랩에는 재료바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업 공간이 마련됐다. 여럿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넓은 공간에서는 어린이들 사이 협업이 자주 일어난다. 어린이들은 다른 어린이의 작업을 지켜보다가 의견을 낸다. 창작품을 만들던 어린이가 이를 받아들이면 처음 만난 어린이들이라도 창작품을 같이 만든다.

시간을 두고 여러명의 어린이들이 함께 거대한 창작품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한 어린이가 두꺼운 종이로 어린이 1명 정도 들어가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만들었는데 다른 어린이들이 그곳에 장식을 더하고 손바느질한 작은 쿠션 등 소품을 더해 완성하기도 했다.

창가에 있는 작업공간은 주로 혼자만의 작업에 몰두하고 싶은 어린이들이 이용한다. 테라스 근처의 대형 탁자는 곡면으로 이뤄져 넓어졌다가도 좁아지고 좁아졌다가도 펼쳐진다. 어린이들이 여럿이 작업을 하다가도 금세 혼자 작업하는 데 몰입할 수 있도록, 혹은 그 반대로도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모야랩 곳곳엔 어린이들의 창작품이 전시돼있다. 중간 작업 중인 창작품도 전시하며 보관을 해준다. 한번에 창작품을 모두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 어린이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창작품의 규모와 형태를 고민할 수 있다.

한쪽 벽면에는 어린이들의 창작품만 전시해둔 공간도 있다. 창작품이 조명을 받아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글과 그림으로 책을 만든 작가들도 많다. 많은 책을 출간하다 보니 출판사를 차린 어린이들도 있다. 그리고 다른 어린이들의 책을 읽어보고 '자신의 출판사에서 책을 낼 생각이 있는지' 문의하는 쪽지를 해당 책 옆에 붙여두기도 한다. 마치 실제 출판 시장에서처럼 출판사가 마음이 맞는 작가를 섭외하는 순간이다.

이외에도 모야랩의 천장에 창이 나 있는 공간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휴지심을 아래위로 연결해 별을 관측하는 망원경을 만든 창작품, 휴지심 여러개를 이어 붙여 1미터가 넘는 롤러코스터를 만들고 구슬을 굴려 떨어뜨리는 창작품도 전시돼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목소리가 기준" = 도서문화재단 씨앗은 어린이작업실 '모야'를 전국 22곳의 공공 작은도서관과 협업으로 해당 도서관 안에 조성했다. 운영은 각 도서관들이 맡는다. 반응이 좋아 올해 3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모야랩은 도서문화재단 씨앗이 직접 운영하는 어린이작업실로 모야만의 실험과 시도들을 하는 실험 공간으로 꾸려나가고자 한다.

공공도서관들은 모야를 운영한 이후 '어린이 이용자들에 대해 잘 알게 됐다'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서비스가 확장될 수 있구나'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서초구립 반포도서관 모야 이용자들은 최근 만족도 조사에서 '아이가 매주 도서관에 가겠다고 스스로 계획을 세운다' '도서관을 더 좋아하게 됐다' '너무 신이 나고 설렌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서문화재단 씨앗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다양한 도서관 경험에 초점을 맞춰 활동하는 민간재단이다. 어린이 도서관의 경우 2008년 춘천 담작은도서관 운영을 시작으로 기적의도서관 5곳의 설계를 지원했다. 청소년 도서관의 경우 2018년부터 '스페이스티'를 조성하며 2021년부터 성남 라이브러리 티티섬을 운영한다. 모야랩이 위치한 '제3의 시간'은 1월부터 운영 중이다.

엄윤미 도서문화재단 씨앗 이사는 "도서관은 굉장히 멋진 공공 인프라다. 도서관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다양한 것을 담을 수 있고 나눠줄 수 있다"면서 "도서관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가장 큰 기준으로 이들을 위한 공간을 제대로 차근차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도서관에 어떤 기능들을 더해야 할지 고민하는 도서관, 사서들을 많이 만났고 앞으로 협업하는 도서관들을 늘리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 도서관" 연재기사]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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