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매 4년마다 찾아오는 미국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공화당의 경우 미국 시간으로 15일 치러진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가 스타트를 끊었고, 민주당은 다음주 23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첫 문을 연다.

'이변은 없었다'는 언론의 표현처럼 트럼프 후보가 과반(51%) 득표를 확보함으로써 나머지 유력 후보였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를 압도했다. 1972년 아이오와주에서 공화당 코커스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위와 2위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12.5%p가 최대였으나 이번에 트럼프가 확보한 지지율은 디샌티스와 30%p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트럼프 후보의 압승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오는 7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공화당의 최종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가 열린다. 여기에 파견하기 위해 아이오와주에 할당된 대의원 표는 전체 2467표 가운데 40표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11월 5일 대통령 선거를 위한 최종 선거인단에서 아이오와주가 차지하는 수는 6명에 불과해 전체 선거인단 538명을 기준으로 볼 때 1% 정도다.

하지만 약 10개월에 걸친 미국 대선의 대장정에서 언제나 첫 출발점이 된 아이오와 코커스의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오죽하면 뉴햄프셔는 대통령 선거인단 선출을 위한 민주당 예비선거를 다른 어느 주보다 먼저 실시하도록 명문화까지 한 상황이다. 그만큼 선거의 첫 단추가 어떻게 채워지느냐의 중요성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프라이머리에 비해 코커스가 진행방식 등에 있어서 다소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이오와주를 강타한 영하 30℃의 날씨에서 트럼프가 압승을 거둔 사실은 향후 선거 과정에서 공화당의 순도(純度) 높은 결집 현상을 예고한다.

공화당 순도 높은 결집 예고한 아이오와

과연 트럼프는 미국 역사에서 다른 대통령의 집권 이후 다시 한번 재집권하는 이른바 '징검다리 재임'에 성공하는 유이(有二)한 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하나는 미국 국내적인 차원이고 또 하나는 국제질서 차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선거 결과 전복 시도 연루' 혐의를 포함해 91개 사안에 걸쳐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 콜로라도주와 메인주 대법원은 트럼프의 후보 자격 박탈을 결정했고, 트럼프는 이에 항소해 연방대법원으로 판단이 넘어간 상태다.

총 9명으로 구성된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듯이 지난 2022년 바이든 대통령 지명으로 미국 연방대법원 223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흑인 여성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이 대법관으로 합류한 상황인데, 보수 성향 6인과 진보 성향 3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직 대통령 바이든이 인기가 없는 핵심 이유는 '고물가와 고금리'로 대표되는 경제상황, 그리고 외치(外治) 실패 때문이다. 최근 미국을 다녀온 방문자들이 한결같이 언급하듯이 현재 미국물가는 천정부지 수준이다. 코로나 시기 전후로 대폭 늘어난 유동성을 안정시키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채택하고 있지만, 동시에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특정 산업 부분에서 부양책을 고수하는 정책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양극화 심화로 고소득층의 과감한 소비가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단기간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이슈와 설명을 제쳐두고, 정치 지도자는 대중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바이든이 불리해 보인다. 혹자는 폭스뉴스 혹은 친 공화당 언론들이 '무능하다' '결단력이 없다' '노화했다' '에너지가 없다' 등과 같은 프레임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계속해서 덧씌운다고 강변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모든 정치 지도자는 그런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담론적 공격에 효과적으로 방어하면서 다시 반격을 가해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확보하는 일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능력의 알파요 오메가다.

현재와 같은 미국 유권자들의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바이든 vs 트럼프'의 게임이 아니라 '트럼프 승리 vs 트럼프 실패'의 게임이라는 인식이 굳어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선거는 과거와 달리 유력한 제3 후보의 등장이 없다는 점에서도 특이함을 발견하게 된다.

푸틴이 트럼프 위한 메시지 낼 수도

두번째로,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을 국제질서 차원에서 보자면 지금과 같은 국제정치 혼돈의 시기는 트럼프와 같이 포퓰리즘 성향의 후보에게 일단은 유리한 측면이 있다. 과거의 경우에는 우크라이나전쟁이나 중동 사태와 같은 국제정치 혼돈이 미국으로 하여금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해, 현직 대통령에게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정부가 외교안보 사안에 투입할 수 있는 정책 자산이 매우 제한적이다. 특히 미국 유권자들에게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일종의 고유명사로 된 터라, 국제안보를 해결함으로써 비롯되는 리더십이 아니라 분명한 메시지의 발신에서 비롯되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형국이다.

좀 더 큰 그림에서 가정을 해보자면 3월 대통령 선거에서 또 한번 당선이 유력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경우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을 위해 트럼프와의 대화와 협상이 훨씬 수월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당선 직후부터 여름까지 우크라이나전쟁 및 유럽 안보와 관련해 트럼프 후보에게 유리한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던질 가능성이 있다.

주지하는 바, 3월부터 대략 6~7월 정도까지는 미국 대선 후보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중동 사태의 경우 트럼프는 대통령이던 2018년 미국의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한 바 있다. 중동 문제에 대한 트럼프행정부의 판단과 스탠스가 옳고 그름을 떠나, 미국 유권자들은 보다 분명하고 간결한 중동 문제 해법 그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차원에서 현재 북한 역시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과감하고 적극적인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한 관계를 '별도의 두개 국가'로 세팅했으니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여하한 대북정책을 거부할 자신들만의 논리를 확보한 상태다. 아마 3월 푸틴 대통령의 재당선 직후 평양에서 열릴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외교 공간의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만에 하나 트럼프가 최종 승리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북미 협상 재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최근 대선을 마친 대만과 중국 문제는 너무 복잡한 사안이니 오늘 지면에서는 잠시 제쳐놓기로 하겠다.

트럼프 최종 승리 가능성은 아직 49%

그로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징검다리 재임'에 성공한 유일한 인물이다. 1889년 한국(조선) 최초의 미국 공사 박정양(朴定陽)을 만났던 바로 그 대통령이다. 이제 막 레이스가 시작된 미국 공화당 경선은 16개주에서 예비선거가 동시에 열리는 3월 5일 '슈퍼화요일'을 거쳐, 6월 4일 사우스다코다에서 열리는 마지막 프라이머리까지 트럼프는 차곡차곡 표를 쌓아갈 것이다. 만약 전체 대의원수 중에서 1234표 이상을 얻으면 11월 5일 운명의 결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여전히 그의 최종 당선 가능성을 49%로 본다. 2016년 대선 때보다 훨씬 정교해진 참모진의 프로페셔널리즘과 러시아 문제와 같은 특수한 국제정세 때문에 49%를 점치는 것이고, 후보 자격 논란이 불거질수록 미국 유권자들에게 각인될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50% 이상을 주지 않았다.

바야흐로 한미 양국 모두에서 선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