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슈퍼볼을 둘러싼 가장 큰 화제 중 하나는 우승팀 캔자스시티 선수인 트래비스 켈시와 열애 중인 미국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였다. 스위프트의 가치는 내셔널풋볼리그(NFL)에 새로운 팬, 특히 여성과 소녀팬을 유치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NFL 시청률은 53%, 18~24세 연령대에서는 24%나 증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새로운 팬덤 덕분에 리그 관련 후원이 증가한 현상을 ‘스위프트 범프(Swift bump)’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보수층은 스위프트가 추종자들에게 민주당을 지지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국방부의 심리작전, 즉 사이옵(psyop)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폭스뉴스의 앵커 제시 워터스가 제기한 이 주장은 스위프트의 NFL 경기 출연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늘어나면서 보수층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워터스는 1월 9일 ‘제시 워터스 프라임 타임’ 방송에서 “스위프트가 그녀의 대규모 소셜미디어 팔로워를 활용해 바이든의 재선을 성공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부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음모론을 처음 제기했다.
보수층은 스위프트에 또 다른 비판도 제기했다. 1월 28일자 폭스뉴스의 헤드라인은 ‘테일러 스위프트 제트기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였다. 진보주의자들은 스위프트의 제트기 사용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오래전부터 비판해왔지만 보수논객들이 이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켈시와의 열애도 공화당 지지층엔 공포
이같은 음모론의 가장 큰 원인은 스위프트가 민주당 후보의 입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왔고 그 결과 젊은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녀는 2018년 테네시주 공화당의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 후보 대신 민주당 후보 필 브레데슨을 지지했다. “피부색, 성별, 사랑하는 사람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인의 존엄성을 위해 싸우지 않을 사람에게는 투표할 수 없다”며 처음으로 공개적인 정치적 지지 선언을 한 바 있다.
2020년 대선에서 스위프트는 바이든을 지지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는 유색인종이 안전하고 대표될 자격이 있고, 여성은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일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성소수자(LGBTQIA+) 커뮤니티가 인정받고 포용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프트와 그녀의 남자친구 켈시와의 열애도 공화당 지지자들의 공포를 더한다. 켈시는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 대변인으로서 ‘미스터 화이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론 드샌티스 등 저명한 우파 인사들의 백신 반대를 반박하는 역할을 단단히 해냈다. 또한 그는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에 관한 관심을 끌기 위해 국가 연주 도중 무릎을 꿇은 콜린 캐퍼닉 선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스위프트의 충성도 높은 팬층은 바이든과 트럼프 캠프 모두 주목하는 요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의 고문들은 스위프트의 잠재적 지지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스위프트의 투어 출연 가능성까지 논의했다고 한다. 한편 트럼프 소식통은 롤링스톤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스위프트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해 ‘성전 (holy war)’을 선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위프트의 선거 영향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유권자 등록 사이트 ‘Vote.org’에 따르면, 유권자 등록을 촉구하는 지난해 9월 그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유권자 등록을 3만5000명 늘리는 데 이바지했다고 한다. 또한 스위프트의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2020년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에 소개된 후 다시 주목을 받았으며, 그녀가 반트럼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장면은 계속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여성 위상 강화에 대한 두려움도 반영
사실 보수층의 음모론은 민주당을 지지했던 스위프트의 과거 발언에 대한 우려와 여성혐오가 결합한 산물이다. 캔자스대학의 사회학자인 브라이언 도노반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중 한명이기 때문에 남성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주장한다. ‘아빠, 브래드, 채드(dads, Brads, and Chads)’라고 불리며 미식축구경기 중 카메라가 자주 비치는 그녀에게 분노하는 남성들, 스위프트 노래를 만든 작곡가의 가짜 AI 누드를 만들어 트위터(X)에 올리는 트롤, 그녀의 성공 원인을 의심하는 저명한 우파 논객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불만은 모두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여성혐오는 특히 공화당에 만연해 있으며 낙태금지에 찬성하는 수많은 남성 의원들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다. 이는 트럼프가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자랑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후에도 트럼프를 옹호하던 공화당 의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대법관 후보자를 옹호하기 위해 남성들의 분노를 활용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공화당의 여성혐오에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유행을 보수 헤게모니에 대한 위협으로 취급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논리는 스위프트에 대한 반발의 밑바탕이며 그녀가 쌓아온 영향력과 열렬한 추종자를 거느린 강력한 여성의 위상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스위프트를 향한 공격의 표면 아래에는 젊은 여성 지지층이 부족한 공화당의 약점이 숨어 있다. 최근 미국의 여러 여론조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공화당은 낙태권리를 부정하고, 성 평등을 촉진하는 정책을 막고, 20건이 넘는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면서 점점 더 여성들의 지지를 잃고 있다. 2023년 1월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젊은 여성의 42%, 젊은 남성의 25%가 진보적이라고 답했다. 젊은 유권자 이념성향의 성별 격차가 수년 만에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별 공화당 지지 격차 갈수록 벌어져
2016년 트럼프 당선 이후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정치행동 양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투표 외 기부나 공직 출마 등의 경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할 가능성은 젊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컸다. 하지만 일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젊은 여성들이 후보자에게 기부하고 시위에 참석할 가능성이 더 커졌고, 선출직에 도전하는 젊은 여성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등 이러한 역학관계가 일부 변화하고 있다.
변화는 젊은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 여성의 전반적인 좌편향은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0년 전체 여성의 57%가 바이든에게 투표,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투표한 54%보다 높았다. 특히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높은 교육 수준의 백인 여성들은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중간선거에서도 드러난 여성들의 영향력은 공화당이 직면한 위험을 보여준다. 2018년 민주당은 여성 유권자에서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하원에서 압도적인 민주당 바람을 일으켰다. 낙태 관련 판결에 분노한 여성 유권자들은 2022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공화당이 직면한 성별 지지율 격차는 앞으로 더 큰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미국 보수층은 스위프트의 인기가 민주당의 비밀스러운 선거 캠페인의 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녀의 영향력과 재능을 깎아내리려고 한다. 더불어 스위프트가 민주당의 꼭두각시라는 암시를 통해 바이든의 지지를 약화하려고 한다.
본인이 스위프트보다 더 인기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이나 슈퍼볼이 열린 날 소셜미디어에 “스위프트가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인 바이든을 지지할 리 없다”라고 올린 글은 오히려 그녀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화당은 스위프트를 향한 비난으로 새로운 지지자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
김찬송 위스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