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 참패 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총선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여당 내 별다른 쇄신 행보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치전문가들이 세 가지 수습책을 제시했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4 총선 참패와 보수 재건의 길’ 세미나에서다.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2024 총선 참패와 보수 재건의 길’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태 당선인, 윤상현 의원, 박성민 대표.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이날 세미나는 수도권에서 5선 고지를 탈환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했다.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는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박상병 시사평론가, 서성교 건국대 행정대학원 특임교수 3명이다. 이들이 제시한 방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영남권 의원들의 후선 배치다. 수도권 지역 대패로 국민의힘이 ‘영남 자민련’으로 축소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영남 의원들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남권 의원들의 후선배치와 동시에 수도권 의원들의 전면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박 대표는 “수도권에서 20석도 못 하는 것을 두 번이나 해놓고 부끄러움도 없이 저러고 있느냐”고 최근 영남권 주류 의원들의 ‘안이한’ 인식을 지적하기도 했다.

수도권 당선인들도 수도권·중도 대연합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선인은 “수도권 민심을 잡으려면 지도부만큼은 수도권 중심으로 재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태 경기 포천·가평 당선인은 “청년, 중도와 대연합을 해야 한다. 보수만의 단독 집권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전당대회 룰 개정이다. 지난 번 전당대회에서 적용된 당원투표 100%로 지도부를 뽑을 것이 아니라 민심(국민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대표는 “전당대회 룰을 ‘국민 100%’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100%가 힘들다면 50%라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영남권 후선배치론과도 일맥상통한다. 현재 룰대로 전당대회가 치러질 경우엔 영남권 핵심 지지층의 선호도가 높은 지도부가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

당내에서도 이미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룰 개정을 놓고 영남 주류 및 친윤계와 수도권 기반 비주류 및 소장파들의 신경전이 본격화됐다. 김재섭 당선인은 세미나 후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를 우리만의 잔치로 만들자는 말은 무책임하다”면서 ‘당심 5 대 민심 5’ 룰로 변경할 것을 주장했다. 김 당선인은 또 “조기 전당대회를 하면 집에 어질러져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게 아니라 쓰레기를 보이지 않게 이불을 덮어놓는 꼴밖에 안 된다”며 차분한 접근을 강조했다.

마지막은 대통령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권심판론이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는 필수적이라는 진단이다. 기존의 수직적 당정관계가 아닌 수평적 당정관계 또는 당이 우위에 설 수 있는 관계설정까지도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을 떼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국민의힘을 바라본다”며 “대통령은 국정만 챙기라고 해야 한다. 3대 개혁 이런 것은 그만하고 나머지 정치는 국회에서 집권당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량감 있는 집단지도체제 구성으로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대표는 “지금처럼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따로 뽑는 단일 지도 체제로 두면 당이 대통령을 상대 못 한다”며 “중진 위주의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당 대표가 대통령실에 끌려다니는 일도 없고 대통령실도 당을 함부로 못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날 세미나는 총선패배 후 반성과 성찰의 시각으로 열린 첫 세미나이기도 했다. 다만 당 지도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를 놓고도 쓴소리도 많이 나왔다.

박 평론가는 “총선 참패 이후 처음으로 평가하는 자리라고 해 놀랐다”며 “국민의힘은 아직도 편안하게 주무시는 분이 많으시구나”라고 했다. 서성교 교수는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딱 1석 졌는데 그 결과는 탄핵이었다”며 “대통령실이 위기감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김재섭 당선인은 “지난번에도 지고 이번에도 또 비슷하게 지니 익숙한 것처럼 ‘크게 지지는 않았다’라는 생각이 내부에 있는 것 같아 대단히 우려스럽다”며 “궤멸적 패배를 당했는데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대선과 지선에서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건 사실 희망 회로, 거의 신앙의 영역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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