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4월부터 새로운 연도(年度)가 시작한다. 연도란 달력상의 새해와 달리 회계연도나 학교년도처럼 목적에 따라 1년을 정하는 것인데 4월부터 1년이다. 2024년 3월은 2023년도이고 4월부터 2024년도다. 국제적으로 봐도 특이한 경우인데 그 유래를 따져보면 약 140년 전인 1886년에 당시 메이지(明治) 정부의 회계연도가 7월에서 4월로 변경되면서 시작됐다.

학교년도는 초기에 서양식 교육제도를 받아들여 9월부터 시작했는데 정부 회계연도 기준에 맞추게 되면서 4월로 변경됐다. 그래서 3월이 졸업 시즌이고 4월이 입학 시즌이다. 기업도 대체로 4월 신입사원 집단입사가 이루어진다. 일본의 봄은 사쿠라 벚꽃과 함께 변화와 성장, 이동의 계절이다. 이렇게 100년 이상이 흘렀다. 4월이면 일본 길거리에서 검정색 정장 차림의 신입사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을 햅쌀이란 뜻의 신마이(新米)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구조적 취약성 극복하려는 일본경제의 대응

일본의 이런 시스템을 보노라면 옛 메이지유신 이후 추진된 정부 주도의 집단주의 획일화 일사불란함이 지금까지 일본 사회와 문화의 중요한 코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일본인들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모습은 사회집단에 대한 신뢰와 조화, 공조(共助) 공생(共生) 정신, 겸허함, 자기연마 노력 등과 같은 사회적 강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양 측면의 경계선에 조직 내 집단 따돌림(이지메)과 문화적 다양성(이문화 흡수력)이 공존한다.

도쿄에는 전세계 음식들이 본고장보다 더 다양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팔린다. 1970~1980년대 한국에서 과부라고 차별받던 여성들이 일본에 건너가 자립해 성공한 일이 많았다고 할 정도로 일본 사회는 이문화가 살아갈 공간들이 있다.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라 일본이 아주 달리 보인다.

일본경제도 그러하다. 일본경제는 구조적으로 경제안전보장 문제(에너지 자원 식량의 제약), 소자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 지역사회 피폐라는 어려운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도 같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해 일본경제가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회복력(Resilience)과 자발성(Initiative)이라는 두 개념으로 일본경제의 대응 방식을 분석해본다.

그 중요한 사례가 지역사회 피폐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세계 최초로 고안돼 2008년부터 시행된 고향납세(ふるさと納稅) 제도다. 한국도 이를 벤치마킹해 고향사랑기부제라는 이름으로 2023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홋카이도 아오모리 군마 나가노 같은 지역은 인구감소 지역으로 상당히 열악한 재정 상황이었다. 고향납세를 통해 복지 육아 등에 재정지출이 늘어나면서 인구감소 속도가 늦어지거나 다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고향납세가 지역사회 활성화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 실증된 셈이다.

회복력 측면에서 보면 정부가 세입과 세출을 독점하는 경직된 납세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해 재정 실수요자인 지역 현장에 필요한 자금이 직접 공급돼 문제해결의 회복력이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이 내는 지방세 일부를 자신이 선택한 지역의 경제 사회 발전에 직접 납세(기부)해 사용하는 시스템은 답례품 제공을 고리로 한 지역경제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지역문제 해결의 회복력으로 작용했다. 자발성의 측면에서 보면 정부의 지도 통제를 지양하고 민간이 스스로 추진하는 것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고안된 고향납세제도의 성공

2012년부터 고향납세를 운영하는 민간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해왔다. 여러 민간 플랫폼 간의 경쟁, 다양한 답례품과 지역 활성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 제도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지고 플랫폼의 IT산업이 발전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경제의 구조적 측면과 질적 측면에서 다양성과 유연성을 확대하고 민간(시장)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주목해야 한다.

이찬우 전 테이쿄대 교수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