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의 뵈르게 브렌데 총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 세계경제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국경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일 듯싶다.

한국경제의 각종 경제지표들이 심한 혼조세를 보인다. 지난달 25일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로 1.3% 증가했다는 한국은행의 발표가 있었다. 이를 연단위로 환산하면 5%대를 훌쩍 넘기는 경제성장률이다. 당국자들이나 시장참여자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었다.

부문별로 보면 내수가 민간소비와 건설투자를 중심으로 0.7%p, 순수출이 0.6%p만큼 성장률에 기여했다. 민생고를 알리는 지표들과 상충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로 건설경기의 위기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과도 맞지 않아 의문을 자아낸다. 이어 불과 5일 뒤에 나온 통계청의 ‘3월 산업활동동향’은 2월대비 전산업생산지수가 2.1%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전체 산업생산이 4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나타냈다. 반도체 생산이 0.7% 감소하는 등 제조업 생산이 3.5% 줄었다. 건설업의 침체도 뚜렷하다.

한국은행 총재는 5월 2일 아시아개발은행 총회 참석 중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의 전제가 모두 바뀌었다. 기존 논의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현저히 약해지고,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이 예상외로 호조를 보인 점, 그리고 중동사태 등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유가와 환율의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 등이 지적됐다. 언론은 통화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1분기의 높은 성장률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아직 모르겠다” “어디서 차이가 났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은 총재 “원점 재검토” 발언의 의미

한은 관계자는 ‘삼성 새 휴대폰 출시 효과’나 ‘평년보다 온화한 날씨’ 같은 요인을 의심한다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만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기비 8.3% 늘었지만, 반도체를 뺀 수출증가율은 1.6%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도체 착시 효과’라는 진단은 일리가 있다.

1분기 성장률이 높게 나온 원인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월 2일 한국의 경제성장전망치를 3개월 전 2.2%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기술적인 경제전망 조정치이기에 아직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애초 한은은 내수부진으로 인해 올해 성장률을 2.1% 내외로 전망했고, 이 전제하에서 4월 12일 수정된 한은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올 하반기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를 담았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고용과 임금지표도 혼란스럽다. 1월의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실업률은 역대 최저치이며 연간 고용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1분기 들어 15세 이상 고용률은 지난해보다 0.4%p 올랐고, 취업자수도 작년 동기에 비해 29만명 이상 늘었다.

최근 들어 고용률 상승폭이 큰 연령대는 30대 여성과 60세 이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30대 여성의 고용률 증가 이면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현상이 있고, 60대 고용률 증가 이면에 노령빈곤 현상이 있다고 본다면 정부가 내세우듯이 긍정적인 지표만은 아니다. 주당 36시간 이상 취업자수는 줄었고, 15~35시간 취업자수는 그만큼 늘어났다.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실적을 반영한 상여금 같은 특별급여가 크게 줄면서 1~2월 실질임금의 하락폭도 커졌다.

1분기 성장률을 두고 경제부총리는 “우리 경제성장 경로에 선명한 청신호가 들어 왔다”고 높이 평가했지만,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현 시점에서 예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후자의 의견이 더 타당해 보인다.

외신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는 늘어

외신들에는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들이 오히려 늘어났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17일자 재정점검보고(Fiscal Monitor)에서 미국 중국 한국 등 37개국의 2029년까지 GDP대비 정부부채비율을 추정해 발표했다. 2025년 미국의 재정적자 비율은 7.1%로 선진국 평균치 2% 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단기적으로 인플레 위험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세계경제 전체의 재정 및 금융안정성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경고를 담았다. 고금리가 지속될 걸로 볼 충분한 이유다.

한편 4월 23일자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이 부동산대출 부실 여파로 그림자금융 분야가 면밀하게 살펴야할 약한 고리로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림자금융은 증권사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등의 PF를 지칭한다. 중국의 부동산 및 부채문제도 여전히 심상치 않다.

세계경제는 격변하는데 정치권은 아직도 편 갈라 치고받고 있다. 한국정치는 미래세대에 고시 합격 안해도 의대에 가지 않아도 살만한 사회의 비전을 제시할 수는 없는가.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