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대왕고래’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동해안 유전 가능성을 깜짝 발표하고 이어 정치권 공방이 벌어지면서 뉴스창을 뜨겁게 달궜다. 의혹이 제기되자 컨설팅을 맡았던 미국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직접 날아와 해명했지만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 ‘혈세 논란’이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은 심드렁하다. 산유국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며 반색하는 목소리도, 시추공을 박아 결론이 날 때까지 지켜보자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박정희정권 때의 해프닝을 알고 있는데다, 지난해 대통령이 직접 나선 부산엑스포 유치전 실패의 기억이 생생한 터라 ‘또 무슨 양치기소년 같은 소리야’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을 게다. 훗날의 장밋빛 환상보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팍팍해서일 수도 있겠다.

대왕고래 열 곳 나와도 지지도 상승 어려울 듯

하지만 그것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이슈인데도 이처럼 민심 반응이 떨떠름한 데는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반감이다. 정신 좀 차리라고 매를 들었지만 총선 후 2달이 지나도록 바뀐 징후는 없었다. 물론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야당 대표와 만났고, 1년 9개월 만에 대국민기자간담회도 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것으로 대통령이 달라졌다고 여기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예상대로 해병대 채 상병 특검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했고, 검찰 인사로 김건희 여사에 대한 방어막을 더 두텁게 쳤다.

여기에 ‘변화 가능성 없음’을 더 절감하게 만든 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국회의원 워크숍 때 보여준 모습이다. 총선 참패 후 처음 열린 여당 연찬회에서 ‘반성·쇄신·혁신·변화·개혁’ 같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나간 건 다 잊고 한몸이 돼 똘똘 뭉치자”고 했고, 비대위원장은 “108명도 굉장히 큰 숫자”라고 맞장구쳤다. 자성은커녕 “내가 욕을 먹겠다”며 환한 웃음으로 술잔을 돌리는 윤 대통령을 보며 국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러니 21%라는 윤 대통령의 역대 대통령 3년차 최저 지지율 기록은 필연이라고 하겠다.(한국갤럽 5월 5주 데일리오피니언)

윤 대통령은 ‘대왕고래’ 이벤트를 직접 발표하면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지금 같은 태도로는 대왕고래가 아니라 한반도 천지에 석유가 쏟아진다고 해도 그게 대통령 지지도 상승으로 연결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전문가들 중에는 대통령 지지도가 1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 윤 대통령과 여권이 놓쳐서는 안될 시그널이 있다. 바로 ‘탄핵’ ‘임기단축’에 대한 민심 반응이다.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거친 구호가 총선판을 뒤덮고, 그 후로도 야당 의원들이 공공연하게 “탄핵”을 입에 올려도 과거와 달리 역풍은커녕 미풍도 불지 않는다. 아니 그 흔한 아스팔트부대 하나 나서지 않고 여권 내부에서조차 ‘임기단축 개헌’ 얘기가 나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제는 이런 민심정황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앞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수도권 유권자 10명 중 8명이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하고, 보수본향인 대구경북에서조차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20여%p 높은 지표는 바닥 민심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외교활동을 할 때면 지지도가 올라가지만 아프리카 정상들을 불러 회담을 해도 순방을 떠나도 지금은 요지부동이다. 그것은 아마 윤 대통령이 유권자들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을지 말지의 경계선에 서 있기 때문일 게다.

상황이 이런데 자기들끼지 술잔을 들며 “과거를 다 잊자”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이제라도 여권이 할 일은 과거를 돌아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헤아리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정말 불행한 미래와 맞닥뜨릴 수 있다. 국민의힘도 지난 2년 ‘용산과 한몸이 돼 똘똘 뭉쳤다’가 폭망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격노’보다 ‘경청’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는 없나

5년 임기에서 3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설마 윤 대통령도 남은 임기 3년을 식물대통령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밖에 없다. 민심의 기대보다 더 반성하고 더 쇄신하고, 오로지 민생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은 대왕고래가 아니라 뼈를 깎는 자성을 얘기할 때다. 권력주변의 입에 발린 얘기나 김 여사 말이 아니라 바닥이 거친 민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는 ‘격노’보다 ‘경청’했다는 소식을, 술 얘기 할 때만 환하게 웃는 게 아니라 국회와 야당을 대할 때도 환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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