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해야 사회가 관심을 갖는다. 국가는 이런 분위기를 외면할 수 없어서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하고 관련자를 찾아서 또는 만들어서 처벌이나 대책을 세운다. 그러니 죽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사회와 국가에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느는 것 같다.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자살을 유발하고 있는 것 같다. 1990년대 말 이후 사회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취업의 비정규직화와 불안정 및 노인빈곤도 심화되고 이후 자살도 증가했다. 한국은 2003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자살을 이용하기도 한다. 1991년 5월 벌어진 유서대필조작사건이 그렇다.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정권퇴진운동이 벌어지고 전국적으로 분신항거가 이어진다. 검찰은 분신자살사건에 조직적인 배후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고 이를 밝히자는 방침을 세운다. 마침 또 분신자살사건이 발생하고 유서가 발견되자 유서대필로 수사방향을 정한다. 민주화운동세력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힐 의도였다.

강기훈씨가 유서대필자로 지목돼 자살방조죄로 구속기소된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와 위법수사가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의 허위감정과 위증도 있었다. 법정에서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1992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다. 강기훈씨는 3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다. 다행히 2007년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조작된 사건임을 밝히고 2015년 비로소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

자살 부르는 범죄 정책·수사와 선정적 보도

제2의 유서대필조작사건이 지난해 또 벌어졌다. 현 정부의 건설노조탄압에 항거해 양회동씨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자살을 하는데,보수 언론매체가 검찰의 민원실 CCTV 화면을 근거로 유서대필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필적 감정 결과 유서는 양회동 열사 본인 글씨체로 확인된다.

양회동씨 사건은 현 정부의 ‘건폭’ 프레임에 부응하는 경찰의 무리한 법 적용과 영장신청이 빚은 결과다. 건설현장의 불법재하도급과 중간착취를 해결해보고자 양회동씨를 포함한 강원건설지부 노조간부들은 조합원 채용의 창구 역할을 하며 하청업체로부터 합의에 따라 노조전임비와 임금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공사현장에서 집회를 열고 하청업체의 부실한 안전관리를 신고하겠다고 압박했다. 경찰은 이 점에 주목하고 폭력행위처벌법의 공동공갈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이다.

인권연대는 최근 2004년부터 2023년까지 20년 동안 검·경 조사과정 중 자살자 현황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범죄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전쟁처럼 대응하는 정부에서 검·경 수사 중 자살자가 많았고 또 경찰보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자살자가 많았다.

이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범죄에 대한 강경책을 펼치면 수사기관은 이에 부응해서 범죄혐의자를 척결의 대상으로 보고 제압하려고 하면서 진술에 의존하는 강압적인 수사를 한다. 경찰보다 검찰에서 강압수사의 가능성이 크다. 범죄혐의자를 제압할 수 있는 수단이 검찰에게 더 많고 또 강력하기 때문이다.

유서대필조작사건과 유서대필의혹사건 모두 범죄와 전쟁을 펼친 정부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배우 이선균씨도 현 정부 출범 초 마약범죄와 조직범죄에 대한 강경정책의 희생자다.

범죄자에 대한 혐오·차별 관점 벗어나야

정의실현을 앞세워 펼쳐지는 강경범죄정책과 검·경의 강압수사는 범죄화의 대상이 되지 않은 시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로써 시민의 일시적인 호응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실시간으로 자극적·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매체 때문에 가능하다. 정부의 강경범죄정책과 검·경의 강압수사 및 이를 자극적·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매체의 공생과정에서 자살이 유발된다.

범죄는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수사를 하는 사람도 언제든지 피의자의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범죄에 대해 혐오와 차별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포용과 관용의 관점에 서야 한다. 범죄와 전쟁 전략은 폐기되어야 한다.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