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계약 자체가 무효” 원고 패소

대법 “계약 무효 아냐” … 파기 환송

주식매매 정보를 제공한 이른바 ‘주식 리딩방’의 계약 자체가 불법이더라도, 이 계약을 토대로 한 위약금 합의까지 무효로 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주식회사 A사가 B씨를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A사는 증권정보 제공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다. B씨는 2021년 12월 A사에 가입금 1500만원을 내고 6개월짜리 ‘VVIP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문자메시지를 통해 매수시 종목·수량·가격, 처분시 시점·수량 등을 받는 계약이었다.

A사와 B씨는 특약사항으로, 서비스 제공기간이 끝난 시점에 목표 누적수익률이 700%에 이르지 못할 경우 A사가 B씨에게 6개월 동안 추가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목표 누적수익률이 200%에 이르지 못할 경우 A사가 B씨에게 이용요금 전액을 환불하기로 했다.

문제는 B씨가 계약 기간 중간 해지를 요청하면서 발생했다. A사는 B씨에게 계약 환불계산식에 따라 산정한 약 530만원을 환불해주기로 하되, B씨는 향후 환불금액에 대해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B씨가 이를 위반할 경우 A사에게 환불금액의 2배에 상당하는 금액을 위약벌로 내기로 했다.

B씨는 합의서를 작성했음에도 신용카드 회사에 환불금 약 53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약 960만원에 대한 결제 취소를 요청해 약 960만원을 환불받았다.

이에 A사는 B씨가 환불 받은 금액과 특약상 위약벌, 지연 손해금를 포함해 약 2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B씨는 A사가 자본시장법상 투자자문업자가 아니어서 특정인을 상대로 자문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자본시장법 17조는 특정인에게 투자 자문을 하려면 금융투자업을 등록하도록 규정하는데, A사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투자 조언을 허용하는 유사투자자문업 신고를 하는 데 그쳤다.

같은 법 55조는 손실보전이나 이익보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데, 계약은 최소 200%의 이익을 보장했다는 점에서 위법하다고 원심은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는 유사투자자문업으로만 신고했을 뿐 자본시장법에서 정한 투자자문업자가 아니므로 피고와 같은 특정인을 상대로 1대 1 투자자문행위를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를 상대로 투자자문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 사건의 증권정보제공약정은 강행법규를 위반한 무효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2심 재판부도 “자본시장법에서 정한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간행물·출판물·통신물 또는 방송 등을 통해 투자조언을 할 수 있을 뿐, 특정인을 상대로 투자자문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일단 자본시장법 17조를 불법 행위는 처벌하되 계약 효력은 인정하는 ‘단속 규정’으로 판단하며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시했다. 효력까지 무효로 하는 ‘효력 규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자본시장법을 위반해 체결한 투자일임계약 내지 투자자문계약 자체가 그 사법상 효력까지도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현저히 반사회성, 반도덕성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그 행위의 사법상 효력을 부인해야만 비로소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볼 수 없고, 자본시장법상 규정은 효력규정이 아니라 단속규정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5월 유사수신행위가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계약에 따른 배당금 배분까지는 효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단속 규정’에 대한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이밖에 “금융투자업자와 고객 사이가 아니라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불과한 원고 등 사인들 사이에 이뤄진 손실보전·이익보장 약정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 55조를 유추 적용할 수 없고 약정 효력을 부인할 근거도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소액사건심판법에서 정한 구체적인 당해 사건에 적용할 법령의 해석에 관해 대법원이 내린 판단과 상반되는 해석을 전제로 한 경우로서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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