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전문가·목격자 주장 제각각 … 경찰, 관련 자료 6점 국과수 감정 의뢰

9명의 사망자를 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가 피의자의 급발진 주장과 엇갈리는 전문가 의견, 목격자·관계자 증언에 의문만 커지고 있다.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주요 참고인 조사를 시작하고 물증을 확보하는 등 사고 원인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용우 서울 남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은 3일 오후 열린 브리핑에서 “차량의 속도·급발진·제동장치 작동 여부 등에 대해 (사고) 차량을 전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정 의뢰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감정 의뢰 대상은 △사고 차량인 제네시스 G80 △피해 차량인 BMW·소나타의 블랙박스 영상 △호텔과 사고 현장 주변 CCTV 영상 등 자료 6점이다.

특히 경찰은 G80의 액셀과 브레이크 작동 상황이 저장된 사고기록장치(EDR) 자료도 정밀 분석을 위해 국과수에 보냈다.

국과수 정밀 분석에는 통상 1~2개월이 소요된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이번 사고의 경우 분석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

경찰은 EDR 기록을 확보해 자체 분석하는 과정에서 운전자 차 모씨가 사고 직전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고 1차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EDR 기록 등 구체적인 수사 내용은 국과수 분석 결과 등을 최종적으로 보고 공개할 것”이란 입장이다.

3일 오전 이틀 전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 사고 현장을 찾은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경찰에 따르면 사고 차량은 호텔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나와 약간의 턱이 있는 출입구 쪽에서부터 과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의자는 이와 관련 직장 동료에게 이때부터 급발진이 시작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고 현장에서 가해 차량의 스키드마크(Skid mark)가 발견되지 않았다. 스키드마크는 최대 감속도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정지할 경우 도로 표면의 마찰력에 의해 타이어가 녹아 도로 표면에 흡착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급발진 여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단서 중 하나로 꼽지만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도 존재한다.

경찰은 이날 오전 가해 운전자 차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담당 의사로부터 차씨의 건강 상태에 관한 설명을 들었으며 아직 상태가 좋지 않아 정식 조사 일정을 조율 중이다. 차씨는 갈비뼈가 골절됐다.

경찰은 사고 당시 차에 함께 타고 있던 60대 아내 A씨를 전날 경찰서로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첫 조사를 진행했다. A씨는 ‘브레이크, 제동장치가 안 들은 것 같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경찰은 피해 차량인 BMW와 쏘나타 차주에 대한 조사도 준비 중이다.

또한 경찰이 확보한 G80 블랙박스 영상에는 사고 원인을 밝힐만한 유의미한 증거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블랙박스 오디오에는 “어, 어” 등 음성과 비명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사고의 부상자 1명을 추가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사상자는 사망자 9명, 부상자 7명 등 총 16명으로 늘었다.

이 부상자는 사고로 사망한 시청 공무원 2명과 함께 식사한 동료로, 경상을 입었다. 다른 피해자가 병원에 후송될 때 동행해 현장에 없어서 뒤늦게 파악됐다고 한다.

한편 3일에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 택시가 돌진해 3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날 오후 5시 15분쯤 택시를 몰다가 사고를 낸 70대 남성 운전자 B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이 사고로 보행자 3명 중 1명이 중상을 입고 2명이 경상을 입었다.

B씨는 사고 직후 주변에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입건 후 실시한 마약 간이 검사에서 모르핀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는 이와 관련해 평소 몸이 좋지 않아 다량의 처방 약을 먹고 있다고 진술했다.

마약 간이 검사는 결과가 빨리 도출되지만, 감기약을 복용해도 필로폰이나 아편류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는 등 다소 부정확한 측면이 있다.

경찰은 B씨의 처방약과 채취한 모발, 소변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정밀 검사 의뢰할 계획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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