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을 방직산업이 주도했다면 20세기 우리의 산업발전은 섬유패션이 이끌었다. 1960년대는 당시 최신제품이던 나일론과 폴리에스터를 생산했고, 1987년에는 단일품목으로는 처음으로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생산과 수출의 25%를 책임지던 예전 같지는 않지만 섬유패션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주력산업 중 하나다. 6만여 업체, 26만 종사자, 44조원의 생산액으로 우리 제조업에 있어 기업수 기준 10.2%, 생산액 기준 2.1%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경제 성장과 함께 한 섬유패션 여전히 주력산업

섬유패션은 원료와 원사를 생산하는 업스트림, 원단제작과 염색가공을 포함하는 미들스트림, 그리고 의류와 산업용 섬유제품을 산출하는 다운스트림으로 분류된다. 더 간단히 하면 ‘섬유(textiles)’와 ‘의류(clothing)’로 나뉜다. 2022년 세계무역기구(WTO)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섬유·의류 총수출액은 105억달러, 수입은 193억달러다. 섬유는 수출 83억 달러(세계 점유율 2.4%)에 수입 62억달러로 소폭 흑자인 반면, 의류는 22억달러 수출(0.4%)에 131억달러 수입으로 일방적 적자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의류 생산이 해외로 옮겨가며 섬유산업 생태계 전반이 위축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 시장을 보면 베트남과 같은 저소득국가로의 진출만이 해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미국 등은 여전히 10대 섬유 수출국이다. 이들은 시장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기술개발을 통해 고부가 신제품을 창출해 산업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도 중저가 범용제품 중심의 개도국형 사양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신기술이 집적된 선진국형 성숙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광케이블 플랜트 우주·항공 등에 사용되는 산업용 섬유시장은 2021년 1467억달러에서 2027년 1922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호복 등 특수 의류는 물론 모빌리티 방산 의료 등에 섬유가 활용된다.

정부는 고성능 아라미드, 고강도 탄소섬유, 차세대 전자통신 섬유 등 첨단산업용 섬유의 핵심기술을 2030년까지 초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올 하반기부터 ‘산업용 섬유 얼라이언스’를 운영해 유망제품과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품질과 성능 검증을 위한 시스템도 구축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총 1050억원 규모의 K-카본플래그십기술개발 사업을 비롯한 다수의 산업용 섬유 소재부품기술개발 사업이 올해 신규로 시작되었다. 7.0기가파스칼(GPa)급 초고강도 탄소섬유, 차체 탄소섬유 내외장재, 모빌리티용 복합소재 및 금속대체 섬유강화 복합재 구조물 등이 머지않아 상용화될 것이다.

친환경 전환도 시급하다.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의류 생산자에게 폐기물 수거 및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시작으로, 제품 설계단계부터 폐기까지 환경 요구사항을 명시한 ‘에코디자인규정’을 2027년까지 도입한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패션기업은 ‘친환경 섬유제품 사용협약’을 체결하는 등 글로벌 환경규제가 심화되고 있다. 폐의류를 재활용하는 리사이클 섬유는 물론 친환경 섬유 개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오염의 주범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염색가공 공정의 친환경·저탄소 전환도 서둘러야 한다.

환경친화 첨단소재 기술개발, 섬유패션산업 비상의 양날개 될 것

이에 따라 총 사업비 275억원 규모의 화학재생그린섬유개발사업, 합성 및 천연 피혁을 대체하는 바이오 기반의 비건레더 기술개발사업(502억원)을 차질없이 추진하며, 폴리에스터 혼방섬유의 F2F(Fiber to Fiber) 리사이클 기술개발(350억원)을 내년에 개시할 예정이다. 페트(PET)용기나 섬유스크랩의 단순 재활용을 넘어 폴리에스터 혼방섬유의 무한 리사이클 기술이 개발된다면 섬유산업의 순환경제 구축을 가속화할 것이다.

우리 섬유패션 산업은 기술과 혁신을 통한 새로운 도약의 디딤돌 위에 서 있다. 친환경 섬유로의 전환과 첨단 섬유소재 개발은 섬유패션산업 비상의 양날개가 될 것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