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정당에 대한) ‘실망’에서 이제 (AfD에 대한) ‘확신’으로 바뀌었다.” 9월 2일 독일의 동쪽(구동독) 2개주에서 극우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이 처음으로 제1당, 근소하게 2당으로 각각 승리하면서 나온 분석이다. AfD는 튀링겐 주에서 33.1%, 작센 주에서 30.5%를 획득했다.

우리나라 ‘조국혁신당’처럼 독일 정당역사 처음으로 개인 이름을 내걸고 창당한 변형된 좌파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이 집권당 사민당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BSW는 튀링겐 주에서 15.6%, 작센 주에서 11.7%를 얻었다. BSW는 지난해 9월 창당했다. 사민당은 2개주에서 각각 6.1%, 7.3%를 득표했다. 이어 9월 22일 수도 베를린을 둘러싼 브란덴부르크 주선거에서 AfD는 29.2%를 얻어 사민당(30.9%)에 근소한 차이로 2위를, BSW(13.5%)는 기민당(12.1%)을 제치고 3위를 기록했다. 집권 연정에 참가한 진보정당 녹색당은 4.1%로 의회 입성 문턱을 넘지 못했다.

뉴노멀이 된 독일 내 극단정치

1990년 10월 3일 세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평화통일을 이룩한 독일에, 이후 통합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기성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어떻게 구동독지역에서 극단 정당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을까? 무엇이 구동독주민들을 실망하게 만들었고 새 대안을 찾아가게 했는가?

유럽전문가들은 구독동 지역에서 극단세력이 부상하게 된 원인을 네가지로 분석한다. 먼저 ‘국가안의 국가인 달의 음지’로서 서독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독주민들의 불만이다. 이는 서독에서 들어온 기성정당에 대한 거부와 새 정당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며 극단 포퓰리즘 선거 전략이 먹혀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변혁’을 경험한 구동독인들은 ‘구동독 향수’와 ‘마음의 고향’으로 대안정당을 찾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스위스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고급지들은 독일 극단정치 부상에 대해 특집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평화통일 이후 통합과정에서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오씨’로,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을 ‘웨씨’로 서로 증오하고 조롱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씨는 ‘게으르다’는, 웨씨는 ‘거만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1991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다. 이후 구동독 지역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구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가 되면서 이같은 용어가 기성미디어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구동독 사람들의 마음에는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독일 경제가 유럽을 제패할수록 구동독인의 한숨은 깊어 갔다. 통일 이후 그들은 ‘서독인들에게 조롱당하고 식민지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미주의’에 뿌리를 둔 러시아에 대한 깊은 동정심 역시 꿈틀대고, 미국이 ‘독일의 외교정책을 통제하고 독일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민당 등 집권당이 주장하는 전쟁 지원보다 당장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휴전을 외치고 있다.

동베를린 출신 69세 안나 벤스케 등 많은 구동독인들은 “통일 이후 일자리 등 모든 것을 잃었다”면서 “난민들이 들어와 우리의 권리를 차지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미국보다 러시아 푸틴을 더 신뢰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구동독인들의, ‘감성적 분노’에 기반해 선거운동을 펼친 AfD와 BSW가 성공을 거두었다.

이민정책 불만에 전쟁이 기름 부어

게다가 독일 졸링겐 지역에서 테러로 시리아 난민 3명이 죽고 8명이 부상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민과 난민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주민과 난민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범죄가 발생하면서 극우 정치인들은 이들을 ‘희생자’로 삼았다. 히틀러 나치가 유대인을 사냥했듯이.

AfD는 서방에서 ‘번영의 토대’라고 선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에서 독일이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거 슬로건을 ‘다시 동쪽이 일어선다’로 정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과 러시아 국기가 섞여 있는 포스터를 내걸었다.

아이러니하게 구동독 출신 메르켈 총리가 ‘예고된 반동정치의 주범’이었다고 비판받는다.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2015년 시리아 중동 난민 150만명을 받아들였고 이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면서, 구동독인들 중 연금수급자와 실업자들은 자신들이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구서독 지역에서도 이같이 생각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겪이었다. 난민 100만명이 밀려오면서 이민자 문제가 최고 이슈가 되었다. 독일정부가 우크라이나전쟁에 많은 재정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급증하며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해졌다. 서독 태생 정당들은 구동독인 민생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고, 이 틈새를 새 정당이 파고들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과거 히틀러 나치당이 낙후된 남쪽에서 출발해 독일 전체를 장악한 것처럼, 구동독 지역에 기반한 AfD라는 새로운 정치기운이 독일 전체로 확산될 수 있을까?

베를린 글로벌공공정책연구소의 토르스텐 베너 소장은 “독일의 미래에 전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새로운 정치문화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극단정치가 뉴노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11월 5일 미국에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할 경우 이같은 흐름은 가속화될 수 있다. 이미 유럽에서 헝가리 폴란드 등 구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도 극우 집권이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극단정치가 활개를 칠 수 있는 새 환경이 조성되었고, 이에 따라 극우정당들은 새 선거미디어전략을 수립해 성공하고 있다. 세계화가 결국은 ‘제로섬 게임’이라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극우(좌)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여론 미디어전략으로는 ‘기이한 포퓰리즘’이 활개치고 있다. 지난해 독일 좌파 성향의 탐사매체 ‘코렉티브(correktive)’가 “AfD와 기민당 정치인들이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이주민 수백만명을 아프리카와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계획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전체가 발칵 뒤집어지고 수백만명이 길거리로 나와 시위했다. 아직 진실은 밝혀지고 않았다.

세계적 현상 되고 있는 정당정치 양극화

정당정치 양극화는 미국이 훨씬 더 심각하다. 대선 TV토론에서 트럼프가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 고기를 먹는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믿거나 말거나 어젠다를 마구 던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노림수로 한 말’이라 분석한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는 ‘문화 밈’인 ‘아이없는 고양이부인'을 들고 나왔고, 인기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와 괴짜기업인 일론 머스크가 뛰어들었다. 머스크는 “야옹! 내가 너에게 아이를 선물할게”라고 그녀를 조롱했다. 공허한 페미니즘과 마초 대결의 승부는 11월 5일에 갈린다.

뉴욕타임스와 CNN은 해리스를, 월스트리트저널과 폭스는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유튜브와 텔레그램 등 뉴미디어가 더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새 희망의 시대를 열지 못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진실과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전이 중요하다. 증오를 부추겨 갈라 치고 결집하는 선거 전술이다. 합리적 선택을 하는 ‘스윙보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판 역시 유사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극우 ‘태극기 부대’와 민주당의 ‘개딸’, 이에 기반한 극단적 유튜버 등이 있다. 진영 결집과 돈벌이를 위해 포퓰리즘 선동구호를 마구 던진다. 미디어의 진영전쟁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승자독식 영향이다.

하지만 우리 시민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2002년 월드컵 열기처럼,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보여준 새 세대는 새 희망의 비전과 리더십을 찾게 된다. 한국판 마크롱일 수 있다. 독일처럼 극우로 갈 것인가, 변형된 좌파로 갈 것인가. 2027년 4월 대선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