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쓰지 않고 새 전기·전자제품 사는 이유 ‘비용’

세계는 환경영향까지 고려한 보조금 체계로 전환중

“잘못된 보조금 정책이 소비자들이 친환경 생활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필요하다.”

13일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녹색연합의 ‘전기·전자제품 수리에 대한 경험과 시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고쳐서 쓸지를 결정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비용’이었다. 이 설문에 따르면, 스마트폰 고장 시 수리한 적이 없는 이유 1위(중복 응답)는 ‘수리 비용이 비싸서’(40.5%)였다.

최근 전기·전자제품을 수리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경우(복수 응답)도 2~3순위가 가격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이 질문의 가장 많은 응답은 ‘고장난 제품이 없어서’(44.8%)였다. 이어 ‘수리하는 것보다 새 제품이 더 저렴해서(39.2%)’ ‘수리 비용이 비싸서(38.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질문의 경우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기는 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설문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80%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p.

사진 이미지투데이

허 팀장은 “새 제품으로 교체 시 지나치게 많은 보조금을 책정하면 시장에 잘못된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며 “프랑스의 경우 신제품 교체가 아니라 수리나 수선할 경우 지원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적인 영향까지 함께 고려한 심도 있는 보조금 설계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을 고려한 보조금 체계 전환은 이미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에서는 2025년까지 생물다양성에 유해한 보조금을 포함한 보상책을 공정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개혁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또한 생물다양성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2030년까지 매년 최소 5000억달러씩 유해보조금을 줄이고 긍정적인 보상책으로 전환하는 게 목표다.

한국환경연구원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지속가능한 탄소흡수원 확보를 위한 생물다양성 관련 보조금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보조금 혹은 지원이 행동에 끼치는 영향과 그 행동이 생물다양성에 끼치는 영향을 정립하는 데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또한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 영향보다는 간접적인 영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한 예로 운송 수단의 화석 연료 사용을 늘리도록 장려하는 보조금은 직접적으로는 생물다양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화석 연료 사용으로 증가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해 생물다양성 손실을 일으킬 수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생물다양성과 연계는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생물다양성 테마의 날’이 열리는 등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 일이 파리협정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다. 전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인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Christiana Figueres)를 포함해 파리협정(알기 쉬운 용어설명 참조)의 주요 설계자 중 4명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생물다양성에 관한 ‘야심적이고 변혁적인’ 국제 생물다양성 협정을 만들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생물다양성협약(CBD) = 유엔(UN) 3대 국제환경협약 중 하나다. 1992년 4월 UN 환경계획회의에서 채택됐다. 생물다양성 보전과 생물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으로 얻어지는 이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게 목적이다.

파리협정(Paris Agreement) =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됐다. COP21에서 채택된 파리협정(2016년 11월 발효)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2018년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채택하면서 1.5℃의 과학적 중요성은 전세계적으로 확고해졌다.

김아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