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혁신가 잡스와 머스크의 공통점은 ‘어린아이 같은 경외감’ … 끊임없는 변화 추구

이달 발표된 한 가수의 신곡이 ‘만트라’라는 사실을 알고 반사적으로 26년 전 인터뷰를 떠올렸다.

인터뷰어가 질문한다. “저는 상징적 가치(symbolic value)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인터뷰이가 대답한다. “제 만트라는 집중과 단순함(focus and simplicity)입니다. 어떤 것을 단순하게 만들려면 생각을 깨끗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일단 그 단계에 도달하면 산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1998년 5월 25일, 블룸버그가 발행하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실린 선문답 같은 인터뷰의 일부다.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비즈니스위크의 샌프란시스코 특파원 앤디 라인하트다. 인터뷰이는 1998년 당시 애플의 임시 최고경영자(interim CEO)였던 스티브 잡스다.

현재 애플의 시가총액은 3조4597억달러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을 키워낸 인물의 만트라는 ‘집중과 단순함’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만트라(mantra)는 ‘진리의 말’이다. 롱맨 영영사전을 찾아보니 만트라에는 두가지 뜻이 있다. 만트라는 ‘기도나 명상할 때 반복하는 단어나 소리’를 뜻하지만 ‘한 인간의 규칙이나 원칙을 나타내는 단어나 구절’이라는 의미도 있다.

스티브 잡스에게 만트라는 두가지 정의 모두가 해당된다. 개인적으로 열렬한 수행자의 삶을 살았던 잡스에게 만트라는 명상의 도구였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 황야를 헤맸던 그에게 만트라는 회사를 재건하는 커다란 원칙이었다. 다시 말해 ‘집중과 단순함’은 그가 애플에 복귀한 후 내려야 했던 의사결정의 주춧돌이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인피니트 루프(Infinite Loop) 거리에 있는 애플 캠퍼스. 2017년 커다란 원형의 애플파크가 완공되기 전까지 애플의 제1본부 역할을 했다. 애플파크와 달리 업무 목적이 아니더라도 직원의 초대를 받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 김욱진

“집중하는 능력이 애플을 구했다”

제품 차원에서는 ‘집중’이 그의 철칙이었다. 잡스는 집중하는 과정에서 하지 말 것을 판단하는 일이 해야 할 것을 규정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다. 1997년 애플로 돌아오고 처음 기조연설자로 나선 애플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잡스는 단언한다. “집중은 거절에 관한 것(Focusing is about saying no)”이라고 말이다.

잡스가 복귀하기 전 애플은 35가지가 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당시 애플은 관료주의적 압력과 판매상들의 변덕스런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각 제품마다 다양한 버전을 생산했다. 각각의 제품에는 6300이니 8200이니 하는 식으로 버전 번호가 복잡하게 붙어 있었다. 잡스는 “친구들에게 뭘 사라고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간단명료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제품을 과감히 없애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체 제품의 70%가 사라졌다.

잡스는 내부 전략회의에서도 화이트보드에 사분면을 그려 애플이 각 분야에서 한 가지 제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용 전문가용 데스크톱 노트북이 네 분야다. 그는 각 사분면에 해당하는 네 가지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애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정의했다. 이사회는 반발했다. 잡스가 복귀하기 전까지 애플 이사회는 제품 종류를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제품 개발을 승인하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잡스는 완전히 반대로 자신이 구상한 전략을 밀어붙였다.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네 개 영역에만 집중했고 전문가용 파워맥, 파워북과 소비자용 아이맥, 아이북이 살아남았다. 당시 애플이 생산하던 프린터 서버 개인정보단말기(PDA)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PDA 단종에 항의하러 애플 캠퍼스를 찾은 사용자들에게는 따뜻한 커피를 제공하며 진심을 전달했다.

10년이 지나고 포춘 편집장 벳시 모리스와의 인터뷰에서 잡스는 “애플이 한 것만큼 하지 않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잡스의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집중하는 능력이 애플을 구했다(The ability to focus saved Apple)”고 평가했다.

팀 쿡 체제에서도 이어진 조직 단순화

조직 면에서는 ‘단순화’가 잡스의 접근법이었다. 그가 복귀했을 때 애플은 부문별로 책임 관리자들이 특정 제품을 전담 운영하는 다부문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잡스는 다부문 조직 구조가 애플이 봉착한 한계의 원인이라고 봤다. 각 부문장은 협력하기보다는 경쟁하는 모습을 보였다. 책임 관리자들은 개별 제품의 손익(P&L) 계산에만 치중하며 전체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애플이 자랑하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같은 핵심 분야가 여러 부문에 걸쳐 분산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잡스는 모든 제품 부문 책임 관리자를 정리하고 애플을 기능별로 재조직했다. 그의 원칙은 ‘단순화’였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들 모두가 단일 그룹으로 통합되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애플 브랜드 아래 단 하나의 손익구조만 갖게 되었다. 애플은 1998년 잡스의 개편으로 ‘한 개의 기능적 조직(one functional organization)’으로 변모했다. 이후 애플은 40배 이상 성장했다.

‘팀 쿡’ 체제인 오늘날까지 이 기능적 조직은 유지되고 있다. 잡스가 떠난 이후 팀 쿡이 그의 자리를 이어받았을 때 그는 잡스가 만든 조직구조의 가치를 인식하고 보존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쿡은 “애플에는 유별나고 특별하게 탁월함을 추구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잡스 사망 이후 팀 쿡 체제에서도 단순한 ‘하나의 기능적 조직’ 구조가 제대로 작동할지 궁금해했다. 지금까지는 매우 성공적이다.

제대로 된 인재 찾으면 전투 절반 끝나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언급한 마지막 만트라는 ‘인재’다. 잡스는 2003년 5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서 짧은 강연을 한다. MBA 과정 대학원생들에게 잡스는 애플과 픽사의 최고경영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자신의 만트라를 하나 소개한다. “애플과 픽사에서 제 만트라는 ‘인재 찾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찾으십시오. 그럼 전투의 절반은 끝났습니다.”

그는 회사를 만들 때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가치에 따른 관리(MBV, Management by Values) 개념을 제시한다. 창업자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인재를 빠르게,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모두가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기민하게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잡스는 스탠퍼드 강연에서 애플의 첫번째 가치는 세계 최고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는 물론 이윤을 내는 것이다. 그는 애플의 문화에서 첫째와 둘째는 결코 바뀔 수 없다고 덧붙인다.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윤이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윤을 내는 게 최우선인 조직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잡스는 이러한 가치관에 부합하는 인물로 회사를 구성하려 애썼다.

또한 애플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은 디자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을 아우르는 통합성에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애플은 직원을 채용할 때면 해당 부서의 관리자뿐 아니라 다른 부서나 엔지니어의 의견을 함께 듣는다. “마케팅 부문 직원을 뽑을 때도 디자인 부서 사람들이나 엔지니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는 게 잡스의 설명이다.

잡스와 머스크의 공통점은 ‘경외감’

지난 5일은 제품으로 인류의 진보를 꿈꾼 혁신가가 세상을 뜬 지 13년이 되는 날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당대를 대표하는 혁신가 자리는 일론 머스크가 이어받았다. 문득 머스크의 만트라가 궁금해졌다. 지난해 발간된 일론 머스크 전기를 보면 1995년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재료과학 박사과정 입학을 앞둔 젊은이의 마음이 나온다. “인류에게 진정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세 가지를 떠올렸지요. 인터넷, 지속가능한 에너지, 우주여행.” 이를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만트라처럼 되새기고 되새길 머스크의 인생 비전’으로 표현한다.

잡스의 만트라와 머스크의 만트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둘의 공식 전기를 모두 작업한 아이작슨은 혁신가들의 공통점을 ‘어린아이 같은 경외감(childlike sense of wonder)’으로 표현했다. 대부분 삶의 어느 시점이 되면 세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일을 멈춘다.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필자의 만트라는 금문교에서 마주친 ‘희망이 있다(There is Hope)’다. 세상에 대한 경외감을 잃어가는 지금이지만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김욱진 코트라 경제협력실 차장 ‘실리콘밸리 마음산책’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