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와 포옹, 시진핑은 “친구”… 우크라전, 중동정세, 탈달러 등 논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첫날인 22일(현지시간) 각국 정상들과 잇따라 만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황까지 나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타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의 개최지인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대통령 등과 각각 회담을 했다. 러시아 언론이 공개한 영상에서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과는 악수를 하고, 모디 총리와는 포옹을 나누며 강한 친분을 드러냈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친구”라고 부르며 “국제무대의 심각한 변화가 중러 관계를 훼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라마포사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는 소중한 동맹이자 친구”라고 말한 뒤 “러시아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투쟁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지지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브릭스는 2006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 경제국 모임으로 출범한 뒤 남아공, 이집트,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에티오피아 등에 가입 승인을 내주며 비 서방 국가 연합체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브릭스 회원국들은 세계 인구의 45%와 세계경제의 35%를 담당할 만큼 비중이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번 정상회의에도 36개국과 6개 국제기구가 참가하며 참가국 중 22개국은 국가 원수가 직접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도 이런 기류를 십분 활용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첫날에 이어 푸틴 대통령은 23~24일에도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브릭스 가입국이나 가입 희망국 정상, 주요 국제기구 수장을 잇따라 만난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가 체포 영장을 발부한 후 푸틴 대통령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블록 회의에 온라인으로만 참석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푸틴 입장에서는 자신의 안방에서 세계 지도자들을 맞이해 자신의 건재함과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과시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정상회담에서 다룰 주요 의제도 묵직하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22일자 보도를 통해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정세 그리고 미국 달러 의존도 감소라는 3가지 의제가 주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해서는 첫날 중국, 인도 정상과 의견을 교환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1시간 동안 회담하면서 “우크라이나와 국제 정세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면서 “세계 현안에 대한 입장과 접근 방식이 수렴한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국제 문제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은 세계 안정화를 이끄는 주요 요인 중 하나”라며 “우리는 세계 안보와 공정한 세계 질서를 보장하기 위해 모든 다자 플랫폼에서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디 총리와도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 모디 총리는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에 대해 지속해서 연락해왔다”면서 “이 문제가 오직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믿는다. 평화와 안정의 빠른 회복을 위한 모든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보좌관은 러시아 국영 방송 인터뷰에서 브릭스 정상회의 최종 선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회원국들의 공동 입장에 관한 내용도 포함된다고 전했다.

중동정세도 주요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이란은 가자 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를 지원하며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는 상황인데 중국과 러시아는 레바논 남부와 가자에서의 이스라엘 행동을 비판하면서 휴전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푸틴과 이란 대통령,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만남에 관심이 커지는 이유다.

달러 패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의 첫날 지우마 호세프 신개발은행(NDB) 총재와 만나 브릭스 회원국간 현지 통화 결제 비중을 늘리면 재정 독립성이 증가하고 지정학적 위험이 줄며 경제 발전이 정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NDB는 2014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됐던 브릭스가 미국 주도 국제금융 질서에 맞서겠다며 출범을 결정한 자체 개발은행으로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서방 견제에 맞서는 국제 결제 시스템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브릭스 의장국인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당하고 국제 결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안 결제 시스템이 절실한 상황이다. 암호화폐 같은 디지털 통화 도입을 제안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예프 소장은 AFP 통신에 “러시아는 중국, 인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국에 중요한 나라들이 참여하는 결제 플랫폼을 만들면 미국도 함부로 건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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