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소비자원 정책건의 '방치' … "보험사가 해야 할 걱정을 왜 금감원이 하나"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입원보험금을 못 받게 된 암환자들이 찾는 곳은 결국 금융감독원이다. 금감원이 보험사의 잘못을 바로잡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찾아가지만 보험사의 대답과 별 다를 바 없는 금감원의 답변을 보고 암환자들은 또다시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인다. 소비자들은 무책임한 금감원의 행태를 규탄하며 차라리 금감원을 없애라는 국민청원 글까지 올리고 있다.


금감원은 '소비자는 행복하게'라는 비전을 내걸고 "금융회사에 비해 사회적 약자인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금융소비자 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예방하고 불합리한 제도·약관·금융관행을 신속히 개선해 금융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은 금감원으로부터 보호는커녕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원 '약관 명확화' 정책 건의 = 지난달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 집회에 참석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의 복지부동한 행태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박 의원은 "2015년 11월 30일 공정위 산하의 국가기관인 한국소비자원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권고를 했다"면서 "암보험 약관이 애매해서 분쟁이 자꾸 벌어지고 보험 가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그 약관을 바로잡아 구체화시켜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지금까지 꿀먹은 벙어리"라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원은 모호한 암보험 약관으로 인해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이 계속 제기되자 2013년 암보험 관련 '피해예방주의보'를 발령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암보험금 지급 분쟁은 줄지 않았고 2015년에는 금융당국에 '암보험 약관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관련 정책 건의까지 했다.

한국소비자원은 '암의 직접적인 치료목적' 약관내용과 관련해 △후유증 및 합병증 치료라 할지라도 의사의 소견상 암치료가 주된 목적인 경우 △말기암 환자 치료 △암이 전이되거나 재발된 경우 △암 합병증 발병시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유지가 불가능한 경우 △항암치료시 병실부족 등으로 부득이 하게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우 등의 구체적 사례를 포함시켜 개정할 것을 건의했다.

약관 개선에 소극적인 금감원 = '암보험 약관 구체화' 건의를 수년째 방치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금감원은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암의 직접치료를 구체적으로 정의할 경우 현행 약관에서 보장하는 다양한 치료방식, 향후 의료기술의 발달에 따라 도입될 새로운 치료방식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암의 치료범위를 확대할 경우 보험회사의 보험료 인상, 상품 판매중지 등으로 인해 소비자 보장 기능이 오히려 약화될 우려가 있어 약관개선에 신중을 기해 왔다"고 답했다.

이어 "암보험 관련 분쟁 예방 및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암보험 약관 개선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미래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현재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겠다는 얘기이다. 금감원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보험사들이 모호한 보험 약관을 자의적으로 좁게 해석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약관규제법에 따라 약관의 뜻의 명백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돼야 하지만 실무에서는 보험사에게 유리하게 해석돼 암환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보험료 인상이나 판매 중지는 보험사의 경영진이 걱정해야 할 문제지 금감원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약관이 불명확하면 그건 약관이 아니다. 모호한 약관으로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면 이걸 명확하게 바로잡도록 하는 게 금감원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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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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